논의해야 할 것들
이 글에서는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법적·윤리적 쟁점을 잠시 제쳐 두고, 생성물의 표기와 시장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보려 한다. 아래는 직접 둘러본 범위 안에서 내린 개인적인 판단이다.
시장 조사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이 궁금해 시간을 들여 거의 모든 플랫폼과 커뮤니티를 이 잡듯 뒤졌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직접 커뮤니티 활동에 동참해 보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꾸려 놓은 울타리 안에도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러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AI 음악 이야기에는 도돌이표가 찍혀 있다는 것. 이게 진짜 음악이냐, 창작이 맞냐, Suno나 Udio 같은 도구를 쓰는 사람을 음악가라고 불러도 되느냐. 어느 순간부터는 무의미한 랠리가 된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 짚자면, 생성형 AI 활용자들이 전부 외부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이 아니었다는 거다. 나 역시 악기를 다루고 무대에 서 본 쪽이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깊이 음악을 해 온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관련 커뮤니티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과 훨씬 깊은 경력을 가진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십수 년 경력의 프로들과 수십 년 경력의 현업자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전부를 음악에 빠삭한 집단으로 놓아도 안 되고, 영 모르는 집단으로 놓아도 안 된다.
AI를 활용한 음악 제작은 실험적인 창작이나 보조 도구를 이용한 작업으로서 의미 있을 수 있다. 그러려면 법과 권리의 기준이 더 분명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정직하게 표시되어야 한다. 지금은 둘 다 불충분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작업 과정을 제대로 밝히려는 사람만 끊임없이 자기 표현을 검열한다. 소위 'AI Slop'을 대량 양산하는 쪽은 아무 고민 없이 플랫폼에 생성물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무엇이 남느냐. 성공 신화와 프롬프트 비법, '아무런 훈련 없이도 누구나 될 수 있다'는 환상.
저품질 산출물을 익명으로 대량 유통하는 사람, 생성물을 직접 연주하고 부른 것처럼 꾸미는 사람, 손쉬운 성공을 미끼 삼아 남들 고혈 빠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사용한 도구와 과정을 정직하게 밝히며 창작의 일부로 활용하는 사람을 같은 범주에 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직접 만나 본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발견과 표현, 창작의 확장, 개인적인 만족을 목적으로 이 도구를 쓰고 있었다. 대단한 음악적 성취를 이룩하려는 것도 아니더라. 결과물을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도 있고, 도구가 가진 한계와 조건 안에서 자기 것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도 있다.
현시점의 AI 시장은 선점 경쟁으로 과열되고 있는데, 이게 AI만의 특수한 병리는 아니다. 새로운 제작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해 온 패턴에 가깝다. 홈레코딩, 샘플링, 유튜브. 대부분 비슷한 약탈전을 거쳤다. 다만 변화의 속도와 시장의 스케일이 다르니, 체감 피로도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I를 이용해 다른 종류의 콘텐츠를 만드는 장은 분명 존재해야 한다. 그 나름의 실험성과 재미가 있고,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게 장인성, 훈련, 경력, 저작 책임과 현장성이 오랫동안 가격과 신뢰를 형성해 온 시장과 무분별하게 섞여서는 안 된다.
그 사이의 혼란은 표기와 태그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단순히 AI 딱지를 붙이는 데서 끝내지 말고,
프롬프트만으로 전부 생성한 곡인가. 사람이 구조를 다시 짜고 편집하거나 편곡했는가. 별도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거쳤는가. 직접 연주한 악기나 녹음한 트랙이 들어갔는가. 보컬은 생성된 것인가, 직접 녹음한 것인가, 녹음한 목소리를 변형한 것인가. 제작자는 이 과정을 어디까지 공개하고 있는가.
이런 층위를 묻는 방식이다. 지금의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구분보다 낫다. 무엇을 만들었는지만큼이나, 누가 무엇을 했고 어디까지 책임지는지가 보여야 한다.
이런 체계가 없으면 소비자는 무엇을 듣는지 알 수 없고, 창작자는 어느 시장에서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경쟁하는지 알 수 없다. 한쪽에는 무책임한 대량 생산이 남고, 다른 쪽에는 모든 사람을 향한 의심이 남는다. 정직하게 밝힌 사람과 의도적으로 숨긴 사람이 같은 취급을 받는 구조에서는 결국 정직한 쪽만 손해 본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것을 물을 수 있다.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했고 그 과정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 결과물을 어느 시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다룰 것인지. 거기서 발생한 권리와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지금 실제로 논의해야 하는 것은 그쪽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