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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두 번째 쇼케이스

두 번째 쇼케이스

두 번째 쇼케이스는 Bleed의 거친 라이브 질감과 멤버들의 사람 같은 균열을 더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준다.

# Room 02

공지는 오후 여섯 시에 올라왔다. 사진은 없었다. 파란 배경도 아니었고, 멤버 얼굴도 아니었다. 흰 화면에 검은 글자뿐이었다.

glassh(our) 1st EP <Soft Voltage> Live — Room 02

아래에는 날짜와 장소, 티켓 오픈 시간만 적혀 있었다. 480석. 이전보다 두 배 조금 넘는 숫자였다. 사람들은 숫자를 먼저 봤다. 곡 제목보다, 공연명보다, 밴드 이름보다.

“480석이래.”

“또 작음.”

“그래도 200석보단 낫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진짜 울 듯.”

“Raw 보고 나니까 더 가야지.”

“Bleed 해 줄까?”

“Blue Light Raw만 주고 공연 공지하는 거 진짜 성격 별로다.”

공식 계정은 댓글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 시간 뒤, 쇼케이스 때 찍힌 사진 한 장이 추가로 올라왔다. 다섯 명이 무대 위에 서 있었고, 원재경은 마이크 앞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차규빈은 드럼 뒤에서 스틱을 한 손에 모으고 있었고, 고선우는 기타 넥을 보고 있었다. 윤다정은 장비 위에 손을 올려 둔 채였고, 한준희는 베이스 스트랩을 고쳐 잡고 있었다. 누구도 서로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은 이상하게 혼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고선우는 그 사진을 보고 바로 화면을 껐다.

“왜 또 이걸 올려.”

윤다정은 노트북에서 같은 사진을 열어 놓고 있었다. 괜찮은 컷이야.

“너는 니 얼굴이 안 보여서 괜찮겠지.”

“보여.”

“장비가 더 보여.”

“그래서 괜찮다고.”

한준희는 쇼파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있었다. 저는 이번엔 눈 뜨고 있어요.

원재경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준희는 그게 목표야?

“낮은 목표가 오래 가요.”

차규빈은 테이블 위에 놓인 공연장 도면을 보고 있었다. 좌석 배치, 무대 폭, 드럼 위치, 키보드 높이, 모니터 스피커 방향. 규빈은 펜으로 무대 뒤쪽 한 지점을 동그라미 쳤다. 여기 좁아. 매니저가 고개를 숙여 봤다. 드럼 라이저 쪽이요? 응. 준희 지나갈 때 걸릴 수 있어요. 준희가 손을 들었다. 저 안 걸려요. 규빈은 도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걸려. 네. 원재경은 웃지 않으려다 실패했다. 고선우는 그걸 보고,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티켓은 7분 만에 끝났다. 200석 때보다는 오래 버텼고, 그래 봤자 7분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손을 떨었고, 실패한 사람들은 숫자를 욕했다. 480석이라는 숫자는 하루 만에 새로운 불만이 됐다.

“다음엔 천 석 잡아라.”

“아니 천 석은 또 비어 보이면 어떡해.”

“그럼 700.”

“이제 좌석수 협상하냐.”

“Blue Light Raw 보고 들어온 사람들 때문에 더 빡세진 듯.”

“Bleed Raw 안 줬는데도 이러면 주면 끝나겠네.”

그날 밤, 원재경은 자기 이름을 검색하지 않았다. 대신 공연장 이름을 검색했다. 무대 사진이 몇 장 나왔고, 어떤 밴드가 그곳에서 찍힌 영상을 올려 둔 게 있었다. 재경은 소리를 끄고 봤다. 조명이 생각보다 낮았고, 객석은 첫공 때보다 멀었다. 멀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곧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방 한쪽에는 카페 플리가 작게 틀어져 있었다. 재경은 음악을 끄지 않았다. 자기 목소리가 없는 음악은 아직 유용했다. 소파 아래에는 기타 케이스가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케이스를 열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손톱 끝을 눌렀다. Blue Light 첫 줄이 떠올랐다. 같은 줄인데 이번엔 다르게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다르게 부르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차규빈은 연습실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아무도 오지 않은 방에서 하이햇 높이를 낮췄다가 다시 올렸다. 전보다 3밀리쯤 낮은 지점에서 손이 멈췄다. 규빈은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공연장 도면의 좁은 통로가 떠올랐다. 480석. 숫자는 늘었고, 방은 그대로 사람을 시험했다. 규빈은 스틱을 집어 들고 한 번만 쳤다. 탁. 소리가 너무 컸다. 그녀는 다시 쳤다. 이번엔 괜찮았다.

고선우는 페달보드 위에 테이프를 새로 붙였다. Mercury와 Bleed 사이, 오른발이 한 번에 갈 수 있는 지점에 작은 표시를 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색이었다. 준희가 나중에 보고 물었다.

“이거 뭐예요?”

“보면 안 돼.”

“봤는데요.”

“잊어.”

“네.”

선우는 대답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기타를 들었다. 한 번 긁었다. 소리가 조금 거칠었다. 그녀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다시 노브를 돌렸다. 이번엔 너무 얌전했다. 세 번째에서 멈췄다. 손이 먼저 알았다. 말로 설명하면 너무 길어질 지점이었다.

윤다정은 Bleed 패치 이름을 또 바꿨다. 이번에는 B-raw가 아니었다. B-room02. 그 아래에는 Midnight Space용 파일도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MS_soft.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잠깐 멈췄다. soft라는 단어가 너무 약해 보였다. 다정은 지우지 않았다. 이번 무대에서 그 곡은 세게 붙잡는 곡이 아니었다. 놓아두는 곡이었다. 놓아두면 망가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했다.

한준희는 베이스를 메고 거울 앞을 지나쳤다. 자기 모습을 오래 보지 않았다. 흰 셔츠 대신 회색 니트를 걸쳐 보았다가 바로 벗었다. 너무 부드러워 보였다. 다시 흰 셔츠를 꺼냈다.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도 이쪽이 나았다. 준희는 휴대폰을 들어 해외 친구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are you playing another show? 준희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아직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maybe만 보냈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너무 준희 같았다.

Room 02의 첫 리허설 날, 다섯 명은 전보다 늦게 웃었다. 첫공 때보다 덜 떨었지만, 덜 떨린다고 쉬운 건 아니었다. 두 번째 무대는 첫 번째보다 잔인했다. 첫 번째는 몰라도 되는 것들이 많았다. 두 번째는 이미 아는 것들이 따라왔다. 어느 구간에서 사람들이 폰을 내렸는지, 어느 이름이 먼저 검색됐는지, 누가 어떤 사진을 잘라 갔는지, 어떤 영상이 비공개였는지, 어떤 댓글이 너무 오래 살아남았는지.

“오늘은 Bleed 뒤에 바로 Parallel 하지 말자.”

원재경이 악보를 봤다. 왜요?

“숨 안 쉬고 들어가는 느낌이었어.”

“그게 좋았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좋아도 우리가 한 번은 쉬어야지.”

고선우가 낮게 말했다. 관객 말고 우리? 규빈은 고선우를 봤다. 응. 다정이 노트북에서 셋리스트 파일을 열었다. 그럼 Mercury 뒤에 짧게 멘트 넣어요? 원재경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멘트 길게는 못 해.”

“짧게요.”

“얼마나 짧게.”

준희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두 문장. 선우가 피크를 입술 사이에 물고 있다가 뺐다. 재경 언니한텐 길어. 재경은 선우를 봤다. 그 정도는 해.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은 믿지 않는 쪽이었다.

리허설은 Blue Light로 시작했다. 이번엔 첫 음이 조금 덜 조심스러웠다. 재경은 첫 줄을 부르기 전에 객석을 상상하지 않았다. 대신 방의 크기를 들었다. 드럼과 기타와 신스와 베이스가 어느 만큼 물러나 있는지 확인했다. 페일 블루 다이브에서 규빈은 템포를 더 단단하게 붙잡았고, 선우는 후렴 직전 한 음을 덜 쳤다. 그 빈 자리에서 재경 목소리가 조금 더 앞으로 나왔다. 다정은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들었다. 준희는 베이스를 아주 작게 줄였다.

“방금 좋았어요.”

“뭐가.”

“안 친 거요.”

“기타리스트한테 좋은 말은 아니네.”

“근데 좋았어요.”

선우는 피크를 다시 손에 쥐었다. 알아.

Bleed가 시작되자 말이 사라졌다. 뚜 뚜 뚜 뚜뚜루. 기타가 마른 표면을 긁었다. 재경이 낮게 말했다. “bleed.” 그 한 단어 뒤에 다정의 아르페지오가 차갑게 돌았고, 규빈의 드럼이 팡 하고 들어왔다. 준희의 베이스는 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컸다. 선우의 리프는 한 번만 이를 드러냈다. 재경은 can you hear what I sound like from in here에서 목을 긁었다. 너무 많이 긁히진 않았다. 정확히 필요한 만큼이었다.

곡이 끝났을 때 누구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규빈이 스틱으로 허벅지를 두 번 쳤다.

“다시.”

“어디부터요?”

“후렴 전.”

다정이 파일을 다시 돌렸다. 선우는 아무 말 없이 노브를 아주 조금 내렸다. 준희는 베이스 줄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재경은 마이크 앞에 다시 섰다. 이번에는 더 작게 시작했다. 작아졌는데 더 가까웠다. Midnight Space는 리허설 끝에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흩어졌다. 각자 너무 조심해서였다. 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들렸다. 재경은 첫 줄을 부르다가 멈췄다. 한 번만 더 갈게. 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드럼이 더 늦게 들어왔다. 선우는 기타를 거의 놓아두듯 쳤고, 준희는 한 박을 더 기다렸다. 다정의 신스는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옆에 있었다. 재경은 그 위에서 가장 부드럽게 말했다. not day, not night.

이번엔 곡이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그대로 놓였다. 다섯 명은 그걸 들었다. 끝나고도 누구도 박수를 상상하지 않았다. 잠깐 빈 방만 있었다. 준희가 조용히 말했다. 이거 좋다고. 다정이 저장 버튼을 눌렀다. 파일명 옆에 작은 별표가 생겼다. 차규빈은 스틱을 내려놓았다. 원재경은 마이크에서 한 발 물러났다.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조금 편해 보였다. 그날 밤 공식 계정은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기다렸다.

“다음 무대에서 Bleed 할까?”

“Midnight Space 이번엔 영상 뜨면 좋겠다.”

“원재경 멘트 두 문장 넘을까.”

“고선우 표정 풀릴까.”

“차규빈 드럼캠 안 주나.”

“윤다정 장비 세팅 궁금해.”

“준희 베이스 더 들리는 자리 어디야?”

티켓은 이미 없었다. 영상은 아직 없었다. 과거 자료는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낡은 파일보다 다음 방을 궁금해했다. 그게 포매터즈가 원한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쪽이 덜 위험했다.

Room 02 당일, 무대 뒤 테이블 위에는 휴대폰 다섯 대가 있었다. 이번에는 모두 뒤집혀 있지 않았다. 차규빈의 휴대폰은 가방 안에 있었고, 윤다정의 것은 노트북 옆에 있었다. 고선우의 휴대폰은 화면이 꺼진 채 기타 케이스 위에 놓여 있었다. 한준희의 휴대폰에는 가족 단톡 알림이 떠 있었고, 원재경의 휴대폰은 비행기 모드였다. 준희가 그걸 보고 말했다. 비행기 타요? 재경이 마이크 선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응.

“어디 가는데요?”

“무대.”

선우가 피식 웃었다. 다정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규빈은 스틱 끝을 맞췄다. 별것 아닌 농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바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스태프가 문을 열었다. 오 분 전입니다. 차규빈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가자. 다섯 명이 따라 나섰다. 복도는 전보다 길지 않았다. 객석 소리는 전보다 컸다. 원재경은 그 소리를 듣고도 휴대폰을 떠올리지 않았다. 고선우는 손을 한 번 털었다. 윤다정은 이어폰 한쪽을 뺐다. 한준희는 베이스 스트랩을 고쳐 맸다. 차규빈은 무대 쪽을 보고 있었다.

첫 번째 밤에는 검증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두 번째 방에는 확인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다섯 명에게는 달랐다.

무대 불이 켜졌다. Blue Light의 첫 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재경이 먼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웃지 않은 채, 아주 조금 편안한 얼굴로 노래를 시작했다.


# 두 번째 방

Blue Light는 첫공 때보다 조금 낮게 시작했다. 같은 곡인데, 처음 문을 여는 손이 달랐다. 원재경은 마이크 앞에서 너무 가까이 붙지 않았다. 한 뼘쯤 떨어진 자리에서 첫 줄을 냈다. 객석은 숨을 참고 있다는 티를 냈다. 이번에는 그게 보였다. 첫공에서는 얼굴들이 너무 가까워서 하나하나 들어왔고, 오늘은 숫자가 늘어서 한 덩어리처럼 보일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 더 잘 보였다. 앞줄 누군가는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고, 왼쪽 뒤편의 누군가는 이미 입모양으로 가사를 따라가고 있었다.

차규빈은 첫 박을 크게 찍지 않았다. 기다렸다가 들어왔다. 드럼은 늦지 않았고, 앞서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고선우의 기타가 왼쪽에서 얇게 문을 냈고, 윤다정의 신스가 그 위를 차갑게 받았다. 한준희는 베이스를 너무 앞으로 밀지 않았다. 그래도 빠지지 않았다. 소리는 각각 따로 보였고, 곡 안에서는 한 방에 놓였다. 아무도 자기 자리보다 한 칸 더 나오지 않았다.

재경은 후렴으로 가기 직전에 객석을 한 번 봤다. 너무 길지는 않았다. 보는 순간 몇몇 휴대폰이 내려갔다. 그녀는 이번에는 그걸 못 본 척하지 않았다. 봤고, 알고, 다음 줄로 넘어갔다.

“Stay in the blue light.”

첫 곡이 끝나자 박수는 빨랐다. 첫공 때처럼 안도의 박수는 아니었다. 확인한 사람들의 박수였다. 재경은 마이크를 조금 낮추고 말했다.

“다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오신 분들도요.”

그걸로 끝이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났다. 두 문장도 아니었다. 고선우가 피크를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며 작게 말했다.

“한 문장이네요.”

재경이 고개를 아주 살짝 돌렸다. 마이크에는 안 잡힐 정도였다.

“됐잖아.”

고선우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 곡 첫 음을 냈다. 존대가 필요한 말은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는 가끔 그런 식으로 말이 빠졌다. 그래도 선은 이상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Pale Blue Dive는 오늘 더 또렷했다. 초반에는 관객이 몸을 아꼈다. 아직 어디까지 따라가도 되는지 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러다 후렴이 오자, 규빈이 스네어를 조금 더 단단히 찍었다. 바로 그때 준희가 한 박 아래에서 받았다. 재경은 “날 붙잡아, 아니 나를 놔”에서 소리를 위로 던지지 않았다. 앞으로 밀었다. 멀리 가는 말처럼 들리지 않고, 앞에 있는 사람의 가슴팍에 닿는 말처럼 박혔다.

고선우는 후렴 직전 한 음을 덜 쳤다. 리허설 때 준희가 좋다고 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 빈 칸이 생기자 재경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선우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더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었다. 기타리스트한테 안 친 게 좋다는 말은 여전히 불쾌했다. 하지만 오늘도 안 쳤다.

곡이 끝나자 준희가 베이스를 살짝 들어 올렸다. 관객 쪽에서 짧은 환호가 났다. 준희는 놀란 듯 웃고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너무 오래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Mercury에서는 객석이 먼저 풀렸다. M.E.R.-cury가 나오기 전부터 기대하는 기척이 있었다. 재경은 그걸 들었다. 들은 사람이 일부러 조금 늦게 들어가는 것처럼, 첫 M을 반 박자도 안 되게 살짝 밀었다. 관객 몇 명이 따라오다가 놓쳤고, 곧 웃었다. 재경도 웃었다. 아주 짧게. 그 웃음이 이 곡을 바꿨다. 첫공 때 Mercury가 “되는 곡”이었다면, 오늘 Mercury는 밴드가 잠깐 관객을 놀리는 곡이 됐다.

고선우는 이 곡에서 처음으로 객석을 봤다. 봤다기보다는, 빨간 재즈마스터 목 너머로 한 번 확인했다.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 순간 기타가 짧게 긁혔다. 너무 깨끗하지 않은 소리였다. 바로 그게 좋아서, 관객 오른쪽에서 작게 환호가 났다. 선우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웃지도 않았다. 대신 다음 번 긁는 자리를 조금 더 낮게 잡았다.

윤다정은 이때도 거의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Mercury 끝에서 패드를 줄이는 손이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곡이 끝났는데도 은색 같은 잔여감이 한 박 남았다. 재경이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들었다. 준희도 들었다. 규빈도 들었다. 누구도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다정은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 한 박은 실수가 아니었다.

짧은 멘트가 들어갔다. 다들 알았다. Bleed로 바로 가지 않기로 한 자리였다. 재경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다음 곡은, 저희가 제일 조심하는 곡이에요.”

객석이 조용해졌다. 선우가 고개를 조금 들었다. 규빈은 스틱 끝을 무릎 위에 한 번 맞췄다. 다정은 노트북 화면을 손끝으로 눌렀다. 준희는 시선을 아래로 뒀다.

재경이 말했다. “그래서 그냥 하겠습니다.”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았다.

Bleed의 루프가 시작됐다. 뚜 뚜 뚜 뚜뚜루. 방금 전까지 Mercury를 따라 하던 입들이 닫혔다. 어쿠스틱 톤의 기타가 마른 표면을 긁었다. 고선우는 손목을 아꼈다. 힘을 많이 쓰지 않았다. 대신 피크 끝이 줄을 지나가는 자리를 정확히 잡았다. 재경이 낮게 말했다.

“bleed.”

그 한 단어 뒤에 윤다정의 아르페지오가 돌았다. 차갑고 선명했다. 넓게 덮는 소리가 아니라, 어두운 방 안쪽에 아주 얇은 금속 선을 놓는 소리 같았다. 그 위로 드럼이 들어왔다. 팡. 팡. 규빈은 쳤다. 세게 쳤지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짧은 마디 끝마다 스틱이 빠르게 지나갔다. 단단하고 정확했다. 준희의 베이스는 그 아래에서 튀지 않았다. 그래서 무대가 흔들리지 않았다.

Verse가 오자 원재경 빼고 거의 다 빠졌다. 조명도 내려갔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걸 기다렸다는 듯 조용해졌다. 재경은 마이크를 가까이 가져오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glass in my throat, 삼킨 채로 웃어.”

첫공 때보다 더 작았다. 작아졌는데 더 아팠다. Pitch-perfect face, 균일한 온도에서 고선우가 한 음을 휘었다. 너무 길게 끌지 않았다. 표면이 조금 긁힌 뒤 바로 사라졌다. 재경은 그 소리 위에 다음 말을 눌러 썼다. 발음은 하나도 흘러가지 않았다. 글자들이 각자 자리를 갖고 떨어졌다.

후렴에서 목소리는 부드럽게 올라가지 않았다. 쇳가루가 섞인 것처럼 밀렸다. can you hear에서 한 번 들리고, what I sound like에서 목이 살짝 긁혔다. 객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아주 작게 “아” 하고 말했는데, 곧바로 삼켰다. 재경은 못 들었을 수도 있다. 들었어도 그냥 갔다.

when I’m real 뒤에 고선우의 리프가 나왔다. 이번에는 객석이 반응하지 못했다. 너무 빨리 지나갔고, 너무 분명했다. 한 박 뒤에야 환호가 따라왔다. 선우는 이미 다음 자리에 가 있었다. 기타는 남겨 놓는 악기가 아니라 지나가는 칼처럼 보였다. 마지막에는 다 빠지고 재경만 남았다. 아웃트로 기타는 완벽하게 닿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는지, 손이 그렇게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주 작은 틈을 두고 말했다.

“bleed.”

하나, 둘.

규빈의 드럼이 끝을 찍었다. 기타 파워 코드가 옆에서 짧게 열렸다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박수가 바로 오지 않았다. 첫공 때처럼 늦게 온 침묵과는 달랐다. 이번 침묵은 사람들이 뭘 봤는지 확인하는 시간처럼 보였다. 곧 박수가 터졌다. 더 컸다. 소리가 아니라 표정들이 먼저 풀렸다.

재경은 이번엔 눈을 감지 않았다.

Parallel은 그다음에 오지 않았다. 규빈이 바꾼 순서였다. 중간에 짧은 악기 전환이 들어갔다. 다정이 패치를 바꾸는 손이 화면처럼 보였고, 준희가 베이스를 다시 고쳐 멨다. 선우는 물을 마셨고, 규빈은 의자 높이를 아주 조금 조정했다. 관객은 그 장면을 봤다. 공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뭔가를 준비하는 시간도 무대였다.

“숨 좀 쉬고 갈게요.”

그 말에 객석이 웃었다. 이번에는 진짜 웃음이었다. 재경도 조금 웃었다. 고선우가 마이크 밖에서 말했다.

“드디어 두 문장.”

“응, 땡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재경이 받아친다. 선우는 바로 시선을 피했다. 객석 몇 명은 그걸 봤다. 그날 밤 그 장면이 가장 많이 말해질 줄은 그때 아무도 몰랐다.

Parallel은 첫공보다 더 낮게 왔다. 재경은 말하듯 불렀고, 준희의 베이스는 그 말 밑을 느리게 걸었다. 차규빈은 덜 쳤다. 덜 치는 손이 더 잘 보였다. 윤다정은 신스를 얇게 두고, 선우는 거의 닿지 않는 곳에 기타를 놓았다. 객석은 더 이상 화장실 타임 같은 말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허리를 조금 뒤로 기댔다. 곡이 사람들을 크게 움직이게 하진 않았다. 대신 몸의 힘을 빼게 했다.

원재경은 이 곡에서 처음으로 편해 보였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증명하려고 서 있지는 않았다. walk me in, slow에서 목소리는 낮게 내려왔고, don’t open it all에서 더 열리지 않았다. 가사를 그대로 따랐다. 더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보였다.

Midnight Space 전에 조명은 바뀌지 않았다. 바뀔 것처럼 잠깐 멈췄다가, 그대로였다. 이것도 다정이 리허설 때 고친 부분이었다. 너무 예쁘게 만들면 곡이 죽는다고 했다. 오늘은 예쁘게 만들지 않았다. 그냥 놓았다.

not day, not night.

이번 원재경은 가장 부드러웠다. 앞에서 목을 긁고, 밀고, 눌러 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래서 더 원재경 같았다. 다 다르지만 전부 같은 사람이었다. 다정의 신스는 화려하게 올라가지 않았다. 떨어져 있는 소리들이 억지로 맞춰지지 않은 채 같이 있었다. 고선우는 거의 치지 않는 것처럼 쳤고, 준희는 한 박씩 기다렸다. 규빈은 크게 치지 않았다. 곡은 완벽하게 닿지 않았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

재경은 마지막 줄에서 웃지 않았다. 대신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아주 작은 변화였다. 앞줄의 누군가가 그걸 봤다. 아마 나중에 쓸 것이다. “Midnight Space 때 원재경 어깨가 내려갔다.” 너무 작은 말이라 사실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겠지만, 이런 밤에는 그런 것들이 오래 남는다.

곡이 끝났을 때, 박수는 첫공보다 빨랐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재경이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오늘은,”

잠깐 멈췄다. 고선우가 기타 넥에 손을 올렸다. 규빈은 스틱을 내려놓지 않았다. 다정은 노트북을 보지 않았다. 준희는 객석을 보고 있었다.

“조금 더 편하게 했어요.”

객석이 조용해졌다. 그 말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재경은 말한 뒤 바로 후회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두 문장이 넘었다. 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희는 입꼬리를 눌렀다. 다정은 화면을 닫았다. 규빈은 먼저 일어났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앞으로 나왔을 때, 다섯 명의 간격은 첫공보다 조금 더 정확했다. 가까워진 건 아니었다. 서로를 더 잘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각자 서야 할 자리를 한 번 더 확인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준희가 반 발 늦지 않았고, 선우는 기타 넥을 보지 않았다. 차규빈은 스틱을 한 손에 모았고, 윤다정은 케이블을 밟지 않았다. 원재경은 마이크 없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그게 덜 어색했다.

사진이 찍혔다. 이번 사진은 덜 흔들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 아쉬워했다.

그리고 더 많이 저장했다.

Room 02가 끝난 뒤에야 글래시는 조금 다른 얼굴이 됐다. 첫공은 살아남는 밤이었고, Raw Session은 방 안에서 실제로 한다는 증거였고, Room 02는 그 증거를 들고 다시 사람 앞에 선 밤이었다. 더는 안 흔들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맞아도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게 됐다는 쪽에 가까웠다. 원재경은 노래로, 차규빈은 박자로, 고선우는 손으로, 윤다정은 패치와 소리로, 한준희는 저역과 몸으로 돌아갔다.

첫공 때는 바깥의 눈이 너무 컸다. 관객도 검증하러 왔고, 멤버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밖의 말을 의식했다. Room 02에서는 이미 한 번 죽다 살아났고, Raw 영상까지 나갔고, 과거 파일도 털렸고, 이름도 검색창에 박혔다. 더 숨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편해졌다. 숨을 곳이 없으면 남는 건 하는 것뿐이니까. 노래하고, 치고, 누르고, 받치고, 빠지는 것.

차규빈은 내가 붙잡아야 한다에서 우리는 이 방식으로 선다 쪽으로 넘어갔다. 원재경은 자기 이름과 얼굴과 과거 커버에서 잠깐 빠져나와 구절 안에 다시 자신을 놓았다. 고선우는 사진과 손 얘기를 소리로 밀어내는 법을 하나 더 배웠고, 윤다정은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일로만 누르지 않고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다뤘다. 한준희는 멀리서 웃으며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팀의 저역을 맡은 사람이 됐다. 다섯 명이 전부 나를 봐가 아니라 내 자리는 여기가 되는 밤이었다.

“오늘은 조금 더 편하게 했어요.”

원재경이 그 말을 하고도 후회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바뀐 것이다. 팬서비스용 멘트라기보다 사고처럼 나온 문장. 첫공의 원재경은 버틴 사람이었고, Room 02의 원재경은 무대를 조금 자기 쪽으로 다시 가져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후에 더 큰 공연이 와도, 더 날카로운 비평이 와도, 이상한 과거 자료가 또 나와도, 다섯 명은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흔들려도 돌아오는 시간이 짧아진다.

공연장을 나오는 사람들은 말이 많았는데 처음 몇 초는 이상하게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좋았다보다 아까 그거 봤어?가 먼저 나왔다. 누군가는 계단에서 그냥 할게요 네 글자만 적어 놓고 5분 동안 멍했고, 누군가는 택시에서 Blue Light Raw를 다시 틀었다. 누군가는 Bleed 후렴을 입 안에서 따라 하다가 자기 목으로는 그 긁힘이 안 나서 관뒀고, 누군가는 Midnight Space 때문에 집까지 조용히 갔다. 각자 다른 곡을 들고 나갔는데, 이상하게 전부 같은 공연을 봤다는 확신이 남았다.

멤버들도 들뜨지는 않았다. 대신 케이블 감는 손이 조금 차분해졌다. 고선우는 기타 케이스 잠금쇠를 첫공 때처럼 쓸데없이 세게 닫지 않았고, 차규빈은 스틱을 가방에 넣으면서 한 번만 확인했고, 윤다정은 파일 저장을 두 번이 아니라 한 번만 했다. 한준희가 “했네요” 하고 말하자 원재경이 “응, 했네” 정도로 받았다. 남들이 붙인 이름에서 잠깐 빠져나와 손에 익은 일로 다시 돌아온 밤이었다.

밖으로 새는 말

공연이 끝나고 처음 올라온 글들은 완성된 후기가 아니었다. 계단, 화장실 앞, 택시 뒷좌석,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서 적힌 문장들이었다. 그래서 더 제멋대로였다. 그냥 하겠습니다그냥 할게요로 쓴 사람도 있었고, Midnight SpaceMidnight Blue라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Mercury 때 고선우가 웃었다는 후기도 있었는데 아마 웃은 건 원재경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고치지 않고 저장했다. 실수까지 현장 냄새가 났으니까.

그냥 하겠습니다 아니고 그냥 하겠다고 했다는 사람도 있고아니 문장보다 그때 조용해진 게 중요해첫공은 살았고 이번엔 했다는 말 봤는데 맞는 듯고선우 안 친 자리가 좋았다는 말 기타리스트한테 너무 잔인하다차규빈 드럼 오늘 더 덜 치는데 더 믿음이 간대윤다정은 예쁜 조명 안 쓰는 쪽으로 곡을 살렸대한준희 오늘 안 걸렸대 ㅋㅋ

더쿠에는 집계글이 먼저 떴다. 감상보다 링크가 빨랐다. 누가 어느 줄을 썼는지, 어떤 곡에서 박수가 늦었는지, 원재경 멘트가 정확히 몇 문장이었는지 모으는 글이었다. 댓글은 감정과 검산이 같이 굴렀다.

갤은 늘 하던 일을 했다. 조롱으로 열고 인정으로 새고 다시 조롱으로 닫았다.

밴드 쪽 커뮤니티는 칭찬을 아끼면서도 말을 바꿨다. 라이브 되냐에서 큰 공간에서도 이 선명함이 남느냐로. 말만 들으면 더 까다로워진 것 같지만, 사실은 한 단계 위로 올려놓은 셈이다. 처음엔 악기 든 사람들인지 확인했는데, 이제는 방이 커져도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아주 박하고 꽤 유용하다.

공연장 밖은 더 사소했다. 누군가는 계단에서 그냥 하겠습니다만 세 번 말했고, 같이 온 친구는 만 했다. 택시 안에서는 Blue Light Raw가 다시 틀어졌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확인하고 이번엔 덜 흔들렸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저장했다. 선명한 사진은 아쉽고 오래 본다. 인간은 정말 귀찮게 생겼다.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크게 들뜨지 않았다. 차규빈이 먼저 물을 마셨고, 고선우는 기타 케이스 잠금쇠를 첫공 때처럼 세게 닫지 않았다. 윤다정은 파일 저장을 두 번이 아니라 한 번만 했고, 한준희는 “저 오늘 안 걸렸죠?”라고 물었다. 규빈이 “응. 안 걸렸어”라고 답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고선우가 원재경에게 물었다.

“Bleed 후렴 괜찮았어요?”

원재경은 마이크를 케이스에 넣고 있었다.

“너 안 친 데 좋았어.”

선우의 얼굴이 잠깐 구겨졌다. “그 칭찬 싫어요.”

“알아.”

“근데 맞아요?”

“응.”

선우는 더 말하지 않았다. 싫은 칭찬도 맞으면 어쩔 수 없다. 윤다정은 그 사이 Midnight 파일을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오늘이 나았어요.” 차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준희는 웃으면서도 베이스 줄을 한 번 더 닦았다. 원재경은 휴대폰을 켰다. 알림이 너무 많아서 바로 다시 껐다.

밖에서는 문장이 커졌다. 안쪽에서는 케이블을 감았다. 이 차이가 Room 02를 오래 남게 했다. 사람들은 그냥 하겠습니다를 팀의 태도처럼 쓰기 시작했지만, 다섯 명에게 그 말은 여전히 한 곡을 지나가는 작은 멘트였다. 그래서 더 괜찮았다. 너무 큰 의미를 본인이 들고 있으면 금방 촌스러워진다. 글래시는 아직 그걸 들고 있지 않았다. 대신 다음 방이 생기면 또 들고 나갈 악기와 파일과 손이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반응은 한 문장으로 줄었다.

첫공은 살아남은 거고, Room 02는 한 거다.

그리고 바로 다음 댓글이 붙었다.

그럼 다음은 어디서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