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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세 번째 사진

세 번째 사진

세 번째 사진은 멤버들을 처음으로 공식 얼굴이 있는 밴드로 묶어내는 위험한 한 장이 된다.

# 세 번째 사진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종이컵이 여섯 개 있었다. 커피는 다 식었다. 아무도 새로 타러 가지 않았다. 벽 한쪽 모니터에는 쇼케이스 사진 폴더가 열려 있었다. 파일명은 길고 성가셨다. GH_SHOWCASE_D14_0012, GH_SHOWCASE_D14_0013, GH_SHOWCASE_D14_0014. 숫자가 올라갈수록 멤버들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졌다. 원재경이 눈을 감은 컷, 고선우가 카메라를 안 보는 컷, 차규빈이 스틱을 반쯤 놓친 컷, 윤다정이 노트북을 너무 정직하게 들고 있는 컷, 한준희가 웃다 말고 입술을 다문 컷.

“세 번째가 제일 낫네요.”

마케팅팀장이 말했다. 말끝이 조금 갈라졌다. 어제 밤부터 잔 사람 목소리는 아니었다.

모니터 속 세 번째 사진에서 다섯 명은 흰 벽 앞에 서 있었다. 화려하진 않았다. 무대 뒤에서 급하게 찍은 사진이라 벽 아래쪽에 콘센트가 보였고, 바닥에는 케이블 테이프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원재경이 아주 조금 웃고 있었다. 너무 많이 웃지 않아서 쓸 만했다. 고선우는 카메라를 보지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고선우 같았다. 차규빈은 스틱을 손에 들고 있었고, 윤다정은 노트북을 닫아 든 채였고, 한준희는 베이스 스트랩을 그대로 걸고 있었다.

“콘센트 지울까요?”

디자이너가 물었다.

마케팅팀장이 한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두면 안 돼요?

“두면 좀 현장 사진 같긴 한데요.”

“그게 필요해요.”

회의실 구석에서 매니저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팬 사진이 너무 날것이라, 공식 사진이 너무 깨끗하면 이상해 보일 겁니다.”

홍보 담당이 물었다. “기사용으로는 너무 덜 다듬은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마케팅팀장이 말했다. “지금 너무 깨끗하면 더 맞아요.”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미 밤새 충분히 맞고 있었다. ‘얼굴 왜 안 깠냐’, ‘사진 더 달라’, ‘팬사진이 공식보다 낫다’, ‘실물 장사 시작이냐’, ‘영상 내놔라’. 서로 다른 말들이 같은 속도로 올라왔다. 창밖은 오전이었지만 회의실 안은 아직 어제 밤을 벗어나지 못했다.

매니저가 다음 폴더를 열었다. 원재경 단독컷이 떴다. 마이크 앞에 선 옆얼굴. 백금발이 조명 때문에 거의 흰색으로 날아갔고, 올림픽 화이트 텔레캐스터 바디가 아래쪽에 걸려 있었다. 얼굴은 잘 보였다. 너무 잘 보였다.

“이건 오늘 안 돼요.” 홍보 담당이 먼저 말했다.

“왜요?”

“올리면 얼굴 얘기로 다 넘어가요.”

디자이너가 확대했다. 원재경의 눈이 선명해졌다. 마케팅 팀장은 바로 말했다. 줄여요.

화면이 다시 작아졌다.

“멤버 본인 확인은요?”

“오후에 받을 예정입니다.”

“오후까지 기다리면 커뮤니티에서 팬사진 더 돌 텐데요.”

“그래도 받아야죠.”

“재경 씨 사진은 특히.”

그 순간 회의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윤다정이 먼저 들어왔다. 검은 후디에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손에는 노트북 가방이 들려 있었다. 뒤이어 차규빈이 들어왔다. 규빈은 인사 대신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잠을 거의 못 잔 얼굴이었다. 그런데 눈은 멀쩡했다. 원재경은 세 번째로 들어왔다. 모자를 눌러썼고, 머리카락이 그 밑으로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고선우는 가장 늦게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한준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준희 씨는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커피 받는 중이요.”

말이 끝나자 문이 다시 열렸다. 준희가 종이컵 네 개를 들고 들어왔다.

“죄송. 하나는 흘렸어.”

“어디에.”

“나한테요.”

고선우가 준희의 소매를 봤다. 정말 커피 자국이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희는 그 침묵을 대충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빈자리에 앉았다. 모니터에는 다시 단체 사진이 떠 있었다. 재경은 자기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다. 다정은 화면 아래 콘센트를 먼저 봤다. 콘센트 보이네요. 디자이너가 말했다. 지울 수도 있다고. 그냥 둘까 봐요. 마케팅팀장이 아주 작게 웃었다. “방금 같은 의견이 나왔어요.”

“너무 깨끗하면 더 이상해요.”

고선우가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그럼 내 얼굴도 너무 깨끗하면 지워 줘요.”

준희가 커피를 내려놓았다.

“언니는 어제부터 거의 안 보였어요.”

“좋네.”

“손은 많이 보이고.”

“그건 안 좋고.”

모니터가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고선우의 손과 빨간 재즈마스터가 선명한 컷이었다. 얼굴은 반쯤 어둠에 가려졌다. 선우는 보자마자 말했다.

“이건 안 돼요.”

“왜요?”

“손이 좀.”

규빈이 사진을 봤다. 안 이상해. 선우는 말문이 막힌 얼굴로 규빈을 봤다. 규빈은 이미 다음 사진을 보고 있었다. 드럼 뒤의 자기 사진이 떴다. 조명 때문에 얼굴은 조금 어둡고, 스틱만 선명했다. 이건요? 디자이너가 물었다. 규빈이 2초 정도 봤다. 괜찮다고.

“너무 빨리 보셨는데.”

“스틱 멀쩡해.”

“기준이 그거예요?”

“아무래도.”

다정의 사진은 오래 걸렸다. 장비 앞에서 고개를 숙인 컷이 세 장, 키보드를 보는 컷이 두 장, 거의 정면인 컷이 한 장이었다. 정면 컷은 제일 예뻤지만, 모두가 동시에 미묘한 얼굴을 했다. 정면은 빼죠. 이유는요? 저 아닌 것 같아요. 그러자, 준희가 끼어든다. 그러면 뭐가 언니예요? 대답은 없었다. 마우스 커서가 장비를 보는 컷 위에 멈췄다. 신스 앞에 선 손이 보였고, 얼굴은 반측면. 다정이 가리켰다. 저거요.

“얼굴이 덜 보이는데요.”

“일하는 모습이잖아요.”

마케팅 팀장이 바로 그 컷에 별표를 눌렀다. 준희의 사진은 이상하게 전부 흔들렸다. 웃는 컷은 다 눈을 감았고, 안 웃는 컷은 베이스 헤드가 얼굴 앞을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뜬 사진에서 준희는 베이스를 들고 객석 쪽을 보고 있었다. 눈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마케팅팀장이 말했다. “이게 제일 나아요.”

“낫나?” 준희가 화면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얼굴이 안 보이는데요? 선우와 눈이 마주친다.

“그래서 나아.”

“너무해.”

“진심인데.”

“더 너무해.”

규빈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너답긴 해. 준희는 그 말에 잠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 할게요. 그렇게 사진 여섯 장이 고정됐다. 단체 하나, 멤버별 하나씩. 원재경 단독컷은 아직 남았다. 모두가 그 컷에서 말을 줄였다. 사진 속 원재경은 마이크 앞에 있었고, 조명 때문에 눈 밑이 조금 어두웠다. 아주 좋았다. 그래서 문제지만. 차분한 음성이 떨어졌다. 오늘 올리면 안 될 것 같아요. 재경이 먼저 입을 열자, 회의실 공기가 조금 편해졌다. 아예 빼요? 음. 아예 빼자는 건 아니고요. 재경은 시선을 여전히 다른 데에 두고 있다. 오늘은 단체랑 무대가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제부터 제 이름이 너무 많아서. 그러자, 고선우가 화면을 본다. 그렇기는 하죠.

“개인컷은 내일 이후가 나아요, 제가 보기에도.”

“근데 팬들은 화낼걸요.”

“원래 거기는 늘 화내.”

“맞긴 해.”

회의실 바깥에서 누가 작은 소리로 욕을 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대충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홍보 담당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얼굴이 조금 굳었다. 매니저가 고개를 기웃댔다. 뭐예요? 홍보 담당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팀장에게 건넸다. 팀장은 화면을 보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예전 커버 얘기 또 올라왔어요. 재경은 이번에도 화면을 보지 않았다. 규빈이 눈을 감았다가 뜬다. 영상이에요?

“아직은 댓글 캡처. 영상은 없고요. 누가 20초 봤다고 썼어요.”

“봤다고.”

“참 편하네.”

“내릴 수 있어요?”

“영상이 올라오면 요청할 수 있어요. 댓글 캡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다정은 노트북을 열었다. 그러면 오늘 사진은 더 빨리 나가는 게 낫겠네요. 왜요? 준희가 묻자, 담담하게 대꾸한다. 지금 공식 자료 없으면 저게 대표가 돼서 계속 도니까. 그 말에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재경은 모자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아주 작게. 티 나지 않게. 규빈은 그걸 봤다. 봤지만 말하지 않았다. 마케팅팀장이 천천히 말했다. 오늘 오후 여섯 시. 단체 무대컷 네 장. 멤버 단독컷은 내일부터 순차로. 원재경 씨 단독은 첫 번째로 가지 않고, 전체 묶음 안에서 가죠.

“순서는요?”

홍보 담당이 물었다. 팀장은 모니터를 봤다.

“차규빈, 윤다정, 고선우, 한준희, 원재경.”

“재경이를 마지막에요?”

“네.”

재경이 처음으로 팀장을 봤다. 팀장은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재경은 조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희가 덧붙인다. 프론트인데 마지막. 다정이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 고선우는 이번에는 웃었다. 아주 짧게. 맞네. 회의실 모니터에는 다시 단체 사진이 떠 있었다. 흰 벽, 콘센트, 케이블 테이프, 다섯 명. 완벽하지 않은 사진이었다. 그래서 지금 쓸 수 있었다. 마케팅팀장이 문구를 읽었다. glassh(our) 1st EP 〈Soft Voltage〉 Showcase. 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무대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다음 무대?”

“잡아야죠.”

“잡힌 게 아니라?”

“잡는 중입니다.”

선우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이 제일 무서운데. 준희는 커피 자국 난 소매를 내려다봤다. 페스티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도 답은 충분했다. 재경은 그때 처음으로 휴대폰을 켰다. 검색창에 자기 이름이 남아 있었다. 언제 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글자를 지웠다. 지우고 나서, 공식 계정에 올라갈 단체 사진을 다시 봤다. 콘센트가 보이고, 케이블 테이프가 보이고, 한준희가 조금 눈을 감고 있었다. 고선우는 카메라를 안 봤고, 윤다정은 노트북을 들고 있었고, 차규빈은 스틱을 놓지 않았다. 재경이 말했다. 이거면 된다고.

“정말요?”

네. 재경이 화면을 끄며 말했다. 너무 안 예뻐서.

“그거 칭찬이에요?”

“지금은요.”

오후 여섯 시가 되자 공식 계정에 사진이 올라갔다. 첫 번째 사진은 무대 끝 단체 인사컷이었다. 두 번째는 Blue Light 중 풀밴드 측면. 세 번째는 Bleed의 어두운 무대. 네 번째는 흰 벽 앞 단체 사진이었다. 콘센트는 지워지지 않았다. 댓글은 1분도 지나지 않아 붙었다.

콘센트까지 올리는 회사 뭐야

공식인데 팬사진 쪽으로 남네

얼굴만 안 팔아서 좋다

아니 그래서 개인컷은요

원재경 단독 안 준 거 일부러지

차규빈 스틱 든 거 봐

윤다정 노트북 들고 있는 거 너무 웃김

고선우 왜 카메라 안 봄

한준희 눈 감은 사진 공식으로 쓰는 거 좋아

다음날부터 개인컷이 하나씩 열리자 반응은 더 직접적이 됐다. 단체 사진에서는 겨우 참던 말들이 고화질 앞에서 한 번에 튀어나왔다. 원재경 컷에는 와씨발 원재경 같은 말이 붙었고, 고선우 컷에는 얼굴보다 빨간 기타와 손이 먼저 돌았고, 차규빈 컷에는 드럼캠 달라는 댓글이 늘었다. 회사가 피하려던 얼굴 플은 결국 왔다. 다만 사진마다 악기와 몸이 같이 잡혀 있어서, 그 플은 오래 얼굴에만 머물지 못했다. 사람들은 예쁘다, 멋있다, 얼굴 뭐냐고 말하다가도 곧바로 손, 스틱, 기타 넥, 심벌, 마이크 거리로 돌아갔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 어쩌면 포매터즈가 처음부터 노린 유일한 탈출구였다.

회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멤버들은 각자 다른 차를 타고 돌아가고 있었다. 마케팅팀장은 자기 자리에서 댓글을 조금 보다가 창을 닫았다. 매니저는 단체 사진 파일명을 바꿨다. GH_SHOWCASE_GROUP_SELECTED_FINAL. 잠깐 생각하다가 뒤에 _v2를 붙였다. 그 사이, 누군가가 네이버에 원재경을 검색했다. 아직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검색량은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