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low
014. 쇼케이스 이후 (2)
쇼케이스 이후 (2)
음악적 색과 과거 자료, 멤버별 흔적이 뒤섞이면서 글래시를 둘러싼 해석은 밴드 바깥의 이야기로 번진다.
처음엔 음악 얘기였다. Soft Voltage가 너무 깨끗하다는 말, Bleed는 왜 네 번째에 있느냐는 말, Parallel이 뒤늦게 온다는 말, Midnight Space를 끝곡으로 둔 배짱에 관한 말. 그러다 오후 두 시쯤 누가 댓글 하나를 달았다. 야, 원재경 옛날 커버 본 사람 있음?
그 한 줄 뒤로 판이 옆으로 밀렸다. 낮은 조회수, 방 조명, 기타 하나, 댓글 몇 개. 원래는 조용히 묻혀 있던 것들이 갑자기 현재의 원재경 옆으로 붙었다. 누가 오래된 백업에서 20초를 올렸고, 몇 분 뒤 지웠다는 말도 돌았다. 영상은 못 본 사람이 더 많았다. 당연히 그쪽이 더 오래 떠들었다.
방금 원재경 커버 20초 본 사람빛삭됐대 ㅅㅂ목소리 지금이랑 비슷한데 훨씬 방 안 같았다더라그 한겨울 태양 댓글 있던 영상 그거 맞나비공개면 올리지 말자는 말 맞는데 궁금해서 돌겠어봤다는 사람만 있고 파일은 없네. 이게 더 사람 미치게 해
이 시점부터 갈증은 조금 성질이 바뀌었다. 쇼케를 본 사람의 문장으로는 부족했고, 과거 파일로는 찝찝했다. 사람들은 결국 같은 말을 다르게 했다. 지금 걸 보여 달라고. 현재의 방에서, 현재의 다섯 명이, 지금 치는 소리로.
제동도 바로 걸렸다. 이런 싸움은 늘 너무 빠르다.
내린 영상을 왜 찾음예전에 공개였으면 얘기가 다르지 않나지금 비공개면 그만해야지궁금한 거랑 재업하는 건 다르다고팬도 아닌데 선비질한다고 욕먹는 중아니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해 인간이 최악
원재경에서 끝나지 않았다. 찾으면 나온다. 고선우는 예전 밴드 사진 한두 장으로 돌아왔고, 차규빈은 화질이 다 깨진 드럼 영상으로 돌아왔고, 한준희는 멜버른 학교 공연에서 얼굴보다 베이스가 먼저 보였고, 윤다정은 광고와 전시와 브랜드 영상 쪽 작업물 묶음으로 조립됐다. 이름보다 조각이 먼저 도착했다. 인터넷은 원래 사람을 통째로 부르지 못한다. 손, 악기, 옆얼굴, 화면 밖 소리 같은 걸 먼저 들고 온다.
고선우 사진은 작은 무대에서 찍힌 거였다. 포스터는 흐렸고 조명은 누렇고 밴드 이름은 촌스러웠다. 고선우는 지금보다 덜 다듬어진 얼굴로 빨간 기타가 아닌 다른 기타를 들고 있었다. 그 사진은 성공담이 아니라 지나간 팀의 먼지 같은 것이어서 더 오래 남았다.
고선우 예전 밴드 사진 봤는데 무대가 너무 작더라저때도 눈은 저랬네망밴이라고 하지 말자. 근데 망한 냄새는 남기타 오래 친 사람이라는 게 사진 하나로 보인다고선우는 예쁘다보다 버틴다 쪽이야
차규빈은 반대로 거의 보이지 않았다. 28초 영상은 드럼 소리만 버텼다. 화면은 흔들리고 조명은 깨졌고 누가 찍었는지도 애매했다. 그런데 스틱이 살아 있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쉽게 믿었다. 얼굴이 없으면 소리만 남으니까. 가끔 인터넷은 우연히 공정해진다. 오래 가진 않지만.
차규빈 28초 이거 진짜 본인이야?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왜 드럼은 보여쇼케에서 안정적이었다는 말 이제 조금 이해돼감자화질인데 박자는 안 깨지네이런 자료는 대체 누가 갖고 있냐
한준희 쪽은 더 이상했다. 멀리서 찍힌 학교 공연. 얼굴은 거의 안 보였고 이름도 영어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베이스가 묻히지 않았다. 준희는 과거 자료가 떠도 계속 반만 보이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게 오히려 지금의 준희와 맞아떨어져서 사람들이 더 붙었다.
Junie Han 저 영상 맞아?얼굴은 안 보이는데 베이스는 들려어릴 때부터 안 묻히는 쪽이었나 봐자료가 나와도 계속 반만 보이는 게 한준희 같네그래도 지금 공연 영상이 더 필요해
윤다정은 얼굴보다 일로 먼저 돌았다. 전시 티저, 광고 사운드, 짧은 브랜드 영상, 로고가 뜨기 직전의 2초짜리 소리. 하나씩 보면 작은데 모아 들으면 사람이 보였다. 필요한 만큼만 밝히고, 필요한 만큼만 차갑게 두는 사람.
윤다정 작업물 모음 듣고 오니까 Soft Voltage 이해돼이 사람은 얼굴보다 파일명이 먼저 떠야 할 것 같아클라이언트 파악 잘할 것 같은 소리글래시가 그냥 예쁜 기타밴드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었네근데 작업물 뒤지는 것도 선 넘지 말아야지
포매터즈 모니터링방에는 이 말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담당자는 원재경 이름으로 뜬 게시글을 하나 열고 바로 닫았다. 다른 직원은 고선우 사진이 퍼지는 속도를 보고 입술을 눌렀다. 비공개 재업로드 요청 가능 여부 확인이라는 메모가 새 파일 맨 위에 붙었다. 현재 자료 추가 필요라는 문장은 그 아래에 붙었다. 회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도덕으로만 막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도덕은 늦고 클릭은 빠르다. 참 품위 없는 현실이다.
연습실 안쪽에서는 그 말들이 더 늦게 도착했다. 늦게 도착했다고 덜 아픈 건 아니었다.
원재경은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또 지웠다. 옆에서 윤다정이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지금은 안 보시는 게 나아요.”
“알아요.”
“알면 안 하셔야죠.”
“그게 되면 좋겠어요.”
차규빈이 물병 뚜껑을 닫았다. “폰 줘.”
원재경은 웃었다. 웃었다기보다는 입꼬리를 잠깐 들었다. “언니한테 맡기면 못 돌려받을 것 같은데요.”
“맞아.”
고선우는 예전 밴드 사진을 봤다는 말을 듣고 기타 줄을 두 번 더 세게 감았다. 말은 짧았다.
“그걸 누가 갖고 있어요.”
한준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Old show videos are terrible.”
“너도 떴어?”
“Maybe.”
“그럼 terrible 맞네.”
준희가 웃었다. 그런데 바로 길게 웃지는 않았다. 이런 농담은 잠깐만 유용하다. 오래 웃으면 이상해진다.
포매터즈는 멤버들에게 과거 자료에 직접 반응하지 말라고 했다. 말 자체는 맞았다. 하지만 맞는 말은 대개 사람을 위로하지 못한다. 원재경에게 예전 커버는 흑역사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장치 없이 남아 있던 자기였고, 그래서 더 불편했다. 고선우에게 예전 밴드 사진은 실패가 아니라 지나온 팀이었고, 그래서 더 가볍게 소비되면 싫었다. 차규빈은 말이 없었다. 윤다정은 출처를 확인했고, 준희는 가족 단톡을 잠깐 껐다.
그날 이후 공식 사진이 조금 더 빨리 나왔다. 단독 얼굴컷만 던지지 않았다. 원재경 옆에는 마이크와 기타가 있었고, 고선우 사진에는 손보다 발밑 페달이 더 보였고, 차규빈은 드럼 뒤가 아니라 스틱을 쥔 옆모습으로 나왔다. 윤다정은 장비 화면이 같이 보이는 컷, 한준희는 베이스 스트랩을 고쳐 잡는 컷. 전부 현재의 몸을 가진 사진이었다. 예쁘게 찍힌 사진이었지만 예쁨만의 사진은 아니었다.
물론 반응이 곱게 끝나진 않았다.
회사 여론 보고 사진 푼 거 맞지근데 사진은 잘 골랐네얼굴만 안 푼 건 똑똑하다원재경 단독컷 더 줘라아니 악기컷도 좋은데요과거 커버 얘기 나오니까 현재 자료로 덮는 거 너무 보인다보이면 어때. 낫긴 낫다
이쯤에서 음악 비평도 다시 돌아왔다. 가사가 너무 좁다는 말, 유리와 빛과 문과 거리만 돈다는 말, 반대로 첫 EP라 그 좁은 어휘가 팀의 문패가 됐다는 말. 믹스가 너무 말끔해서 밴드의 손맛이 덜 보인다는 말. 그런데 이제 그 비평들은 과거 발굴만큼 빠르진 않아도 더 오래 남았다. 짧은 자극은 파일을 찾게 만들고, 긴 글은 곡을 다시 틀게 만든다. 둘 다 귀찮고 둘 다 필요하다.
멤버들은 서로를 과하게 달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준희가 농담을 던지면 차규빈이 짧게 받았고, 다정은 필요한 링크만 모아 매니저에게 보냈고, 선우는 사진 얘기가 나오면 방을 나갔다가 기타를 들고 돌아왔고, 원재경은 댓글을 안 본다고 말한 뒤 사실은 조금 봤다. 다들 못났고 그래서 멀쩡했다.
추가 공연 이야기는 그 틈에서 생겼다. 과거를 금지할 수 없으면 현재를 더 크게 만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오래된 파일을 찾는 손을 멈추고 다음 방을 검색하게 해야 했다. 공식은 이 말을 직접 하지 않았다. 대신 무대컷을 올렸고, 포털 프로필을 채웠고, 멤버별 한 줄 코멘트에서 과거를 언급하지 않았다. 말없이 현재를 두껍게 만들었다.
밤이 되자 원재경은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이번엔 자기 이름이 아니라 공연장 이름을 쳤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방의 좌석표가 떴다. 무대가 조금 더 컸고, 객석은 첫공보다 멀었다. 재경은 그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래도 닫지도 않았다. 과거가 너무 가까이 붙은 날에는, 다음 무대의 거리가 오히려 숨 쉴 자리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