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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쇼케이스 이후 (1)

쇼케이스 이후 (1)

쇼케이스 이후 공식 사진과 얼굴 공개의 속도를 두고 반응의 방향이 다시 갈라진다.

D+15 아침, 포매터즈 사무실 모니터에는 쇼케이스 사진 폴더가 계속 떠 있었다. 공연은 끝났고, 홀은 비었고, 밤새 객석에서 찍힌 사진은 이미 커뮤니티를 한 바퀴 돌았다. 흐린 백금발, 빨간 기타 옆의 손, 드럼 뒤 어깨, 장비만 내려다보는 다정, 웃다 만 준희. 다 흔들렸는데 다 너무 실제 같았다. 회사가 올릴 사진은 그 흔들림보다 깨끗해야 했고, 동시에 너무 깨끗하면 안 됐다. 참 성가신 주문이었다.

보도자료 제목은 낮게 잡혔다. glassh(our), 1st EP <Soft Voltage> 첫 쇼케이스 마무리. 성료라는 말도 빠졌다. 라이브 가능성 입증 같은 문구도 빠졌다. 관객이 쓰면 목격담이고 회사가 쓰면 자화자찬이다. 그 차이를 모르는 회사는 보통 첫 주에 티가 난다. 포매터즈는 적어도 그 정도로 촌스럽진 않았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원재경 클로즈업은 너무 좋았다. 좋아서 빠졌다. 얼굴만 이기는 사진은 지금 올리면 손해였다. 고선우의 손이 선명한 컷도 있었는데, 그건 또 너무 선명해서 빠졌다. 차규빈은 얼굴보다 스틱이 먼저 보이는 사진이 맞았고, 윤다정은 정면보다 신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컷이 남았다. 한준희는 눈이 살짝 감긴 컷을 본인이 제일 싫어하지 않을 것 같았다. 공식이 고를수록 덜 공식 같은 사진만 남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쪽이 맞았다.

오후 늦게 올라온 포스트는 짧았다. glassh(our) 1st EP <Soft Voltage> Showcase. 첫 번째 밤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무대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사진은 무대 끝 단체 인사컷, Blue Light 중 풀밴드 측면, Bleed의 어두운 무대, 흰 벽 앞 단체 사진. 얼굴을 열었는데 얼굴만 팔지는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또 약이 올랐다.

공식 사진 떴다팬사진이랑 결이 다르네원재경 클로즈업 일부러 안 준 거 맞지개인컷 어디 갔냐사진은 좋은데 영상은요고선우 손 보이는데 왜 소리는 안 줌차규빈 드럼캠 내놔윤다정 정면보다 장비컷이 더 낫긴 하네준희 웃는 사진 왜 이렇게 늦게 와

사진이 올라오자 사람들은 저장했다. 확대했다. 밝기를 올렸다. 얼굴을 봤다가 악기를 봤다가 다시 손으로 돌아왔다. 사진은 갈증을 없애지 못했다. 오히려 갈증에 모양을 줬다. 이제 요구는 단순해졌다. 얼굴 말고 움직이는 걸 달라. 저 상태로 치고 부르는 걸 보여 달라. 포매터즈는 그 말을 보고도 바로 영상을 주지 않았다. 너무 빠른 영상은 긁힌 티가 난다. 너무 예쁘게 편집한 영상은 또 보정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사진으로 며칠을 버텼다. 버틴다는 말이 웃기지만, 그 며칠이 진짜 길었다.

D+16부터 고화질 개인컷이 하나씩 풀렸다. 팬사진은 목격의 증거였고, 공식컷은 확인의 물증이었다. 흐린 사진에서는 사람들이 상상으로 채웠고, 고화질에서는 더는 못 피했다. 잘생겼다, 예쁘다, 분위기 있다. 그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글래시는 얼굴을 팔지 않으려고 악기와 무대를 같이 보여 줬지만, 인간들은 늘 얼굴을 먼저 본다. 참 성실하게 천박하고, 또 어쩔 수 없이 정확하다.

원재경 컷은 제일 먼저 터졌다. 백금발, 파란 조명, 흰 기타, 마이크 앞에서 몸을 조금 낮춘 자세. 사진 한 장이 너무 빠르게 사람을 때렸다. 와씨발 원재경이 제일 먼저 돌았고, 그다음이 얼굴 뭐냐, 그다음이 근데 손 봐. 그 순서가 중요했다. 얼굴이 입구였지만 입구 바로 뒤에 마이크와 기타가 있었다. 백금발만 저장하려다 스트랩까지 같이 저장하는 구조. 얄미워도 효율적이었다.

그 반응 뒤에는 바로 견제도 붙었다. 원재경 플 너무 세다, 프론트라 어쩔 수 없는데 또 원재경만 보이면 곤란하지 않나, 예쁘다는 말도 못 하게 하면 웃기지만 얼굴만 얘기하면 아깝긴 해. 이 말들은 팬덤 싸움처럼 보였지만 사실 회사가 제일 신경 써야 할 지점이었다. 원재경은 중심이어도 된다. 그런데 글래시가 원재경의 배경처럼 보이는 순간, 밴드라는 말은 금방 얇아진다.

고선우 컷은 다른 식으로 돌았다. 얼굴은 반쯤 가려졌고, 빨간 재즈마스터가 먼저 들어왔다. 원재경 사진이 밝게 치고 왔다면 선우 사진은 낮게 붙었다. 빨간 기타 고화질 드디어 옴, 고선우는 카메라 안 보는 게 더 낫다, 손이 먼저 보임, 사진이 예쁜데 친절하지가 않음. 예쁘다는 말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기타 쪽으로 밀렸다. 그게 고선우에게는 훨씬 나았다. 예쁜 사람으로 잡히는 것보다, 카메라를 안 보는 기타리스트로 잡히는 편이 오래 간다.

차규빈 컷은 얼굴보다 팔과 스틱과 심벌이 먼저 보였다. 드럼 뒤라서 숨은 게 아니라, 드럼 뒤라서 제 자리에 있었다. 차규빈 사진 봤냐, 드럼 뒤에 있는데 존재감 뭐야, 스틱 든 팔 보고 쇼케 후기 납득, 드럼캠 주세요. 외양 얘기로 시작한 반응이 바로 연주 요구로 넘어갔다. 좋은 방향이었다. 얼굴이 연주를 덮지 못했고, 연주가 얼굴을 다시 끌고 들어왔다.

다정과 준희 컷은 더 늦게 왔다. 다정은 장비 앞에서 고개를 숙인 사진이었다. 정면을 덜 줬는데 오히려 반응이 나았다. 윤다정은 얼굴보다 파일명이 먼저 나와야 할 사람 같다는 말이 돌았다. 좀 못됐는데 정확했다. 준희는 베이스를 잡고 웃기 직전의 컷이었다. 사진보다 영상이 필요하다는 말이 가장 많이 붙었다. 이 둘은 고화질이 뜨고도 끝내 영상 요구로 돌아갔다. 글래시 사진의 최종 목적지가 사진이 아니라는 게 여기서 티 났다.

검색창도 지저분해졌다. 원재경 인스타, 고선우 빨간 기타, 차규빈 드럼, 윤다정 작업계정, Junie Han. 대부분은 실패했고, 실패한 검색어가 또 글이 됐다. 포털 쪽도 바로 깔끔하지 않았다. 앨범과 음원 링크가 먼저 잡히고, 기사와 커뮤니티 글이 뒤섞였다. 팬사진이 대표 이미지처럼 굳기 전에 회사가 손을 대야 했지만, 너무 빨리 손대면 준비된 기획처럼 보였다. 늦으면 일을 못한다고 했다. 빠르면 의심받고 늦으면 욕먹는다. 회사 일이란 참 우아한 척하는 진흙탕이다.

D+17 밤, 원재경 인물정보가 먼저 잡혔다. 정면 화보가 아니라 쇼케이스 무대컷이었다. 마이크 앞, 백금발, 흰 텔레캐스터가 같이 보이는 반측면. 소속그룹 glassh(our), 포지션 보컬·기타, 작사·작곡. 커뮤니티는 바로 알아봤다. 원재경 네이버 떴다, 사진 쇼케 컷으로 넣은 거 봐, 원재경만 먼저 뜨니까 또 원재경 밴드처럼 보이네, 보컬 작사 작곡이면 먼저 뜰 만하지. 좋아하는 쪽과 찜찜해하는 쪽이 동시에 붙었다. 원재경이 먼저 뜨면 칭찬도 먼저 오고 견제도 먼저 온다. 그게 중심의 비용이었다.

다음날 그룹 페이지가 보강됐다. 멤버 다섯 명 이름이 같이 박혔고, 사진은 단체 인사컷이었다. 장르 표기에는 또 소소한 시비가 붙었다. 밴드팝이 맞지 않나, 모던 팝 록이라고 해야 덜 가벼워 보이긴 해, 인디도 아니고 오버도 아니고 그냥 글래시라고 하자. 포털의 작은 칸 하나가 의외로 넓었다. 밴드라고만 하기엔 프로덕션이 좋고, 아이돌 밴드라고 하기엔 관계 문법이 다르고, 인디라고 하기엔 회사가 붙어 있었다. 그 애매한 칸에 글래시는 한동안 서 있었다.

고선우와 차규빈 정보가 뒤따라 뜨자 원재경 쏠림은 조금 풀렸다. 고선우는 빨간 기타가 같이 보이는 사진, 차규빈은 드럼 뒤에서 스틱을 든 사진. 이제 원재경 밴드 소리는 좀 덜하겠네라는 말이 나왔고, 바로 밑에 그래도 중심은 원재경이지가 붙었다. 그다음 댓글은 더 정확했다. 중심이랑 원맨밴드는 다르지. 그 말이 한동안 남았다. 글래시에게 필요한 구분이었다.

윤다정과 한준희까지 검색에 잡히는 데에는 며칠이 더 걸렸다. 너무 느리진 않았지만, 충분히 답답했다. 그 며칠 동안 사람들은 멤버 이름을 하루에 한 번씩 검색했다. 직접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지런하다. 그리고 각자 새로 뜬 사진을 보며 조금씩 말을 고쳤다. 원재경 얼굴로 들어온 사람도 고선우 손을 저장했고, 차규빈 드럼 얘기를 하던 사람도 다정 신스 컷을 보며 멈췄고, 준희는 여전히 영상 달라는 말 속에 있었다.

공식은 뒤늦게 쇼케이스 포토를 묶어 올렸다. 팬들이 먼저 발견하고, 커뮤니티가 떠들고, 공식은 한 박자 늦게 정리했다. 순서가 좋았다. 공식이 먼저 크게 알렸다면 너무 장사 같았을 것이다. 팬들이 발견하면 사건이 된다. 네이버 인물정보 하나가 사건이 되는 꼴은 우습지만, 이 판에서는 정말 그랬다.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말이 많았고, 말이 많다는 건 대개 관심의 못생긴 얼굴이다.

대표 반응은 결국 이렇게 남았다.

처음엔 원재경만 보였는데 하나씩 뜨니까 팀이 보이긴 하네.

그 정도면 됐다. 완벽한 납득이 아니라, 말을 조금 고치는 정도. 현실에서 사람은 그렇게 큰 폭으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어제 한 말을 지우지 않고 오늘 한 줄을 덧붙인다. 글래시는 그 덧붙임 속에서 조금 더 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