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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Flow

006. D-3

D-3

D-3의 Bleed는 그동안 쌓인 오후 여섯 시 습관을 더 거칠고 선명한 반응으로 밀어붙인다.

사흘 동안 사람들은 여섯 시에 손이 먼저 갔다.

처음엔 사진만 확대했고, 다음엔 15초짜리 파란 컷을 욕하면서 다시 봤고, 그 다음엔 Blue Light의 첫 줄을 잡았다. Pale Blue Dive에서는 곡명이 길다고 투덜대며 0:43을 잘랐고, Mercury에서는 M.E.R.-cury를 따라 하다가 입술 모양까지 잃었다. 이쯤 되면 아직 팬은 아니라는 말이 점점 허름해진다. 말은 늘 싸다. 하지만 세 번을 듣고 네 번째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미 어딘가를 내줬다. 본인만 영수증을 못 봤을 뿐이다.


D-3 오후 여섯 시

네 번째 1분이 올라왔다. 제목은 Bleed였다. 지난밤부터 사람들이 괜히 기다리던 바로 그 제목. Mercury를 듣고 웃던 타임라인이 “내일 블리드면 드디어 어두운 거 오냐.” 하고 손 비비던 그 제목. 커버 이미지는 앞선 날들보다 덜 친절했다. 푸른빛은 남아 있었지만 더 낮게 깔렸고, 유리문인지 벽인지 모를 어두운 면 아래로 붉은 빛이 아주 얇게 샜다. 피처럼 노골적이면 차라리 웃기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누가 문을 닫았다고 믿은 뒤에야 들리는 소리 쪽이었다. 닫힌 줄 알았던 문 밑으로 새는 그 얇은 불빛. 예쁘게 겁주는 법을 아는 이미지라서 더 얄미웠다.

댓글이 먼저 틀렸다. 정확히는 사람 손가락이 먼저 틀렸다. BleedBlead, Breed, 블리드, 블ㄹ, 피나는 거, 그 목 유리 노래로 굴렀고, glassh(our)는 여전히 글라시, 글래시, 글래쉬, 괄호밴드, 글래스아워 사이를 헤맸다. 중요한 건 그 오타들이 전부 같은 링크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이름을 정확히 쓰지 않아도 귀는 이미 그쪽을 찾고 있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대충 살지만, 대충 꽂힌 건 꽤 오래 물고 늘어진다.

첫 반응은 빠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빠르게 올라왔는데, 앞선 날들처럼 바로 웃기지 못했다. Mercury 때는 다들 철자를 씹고 입모양을 놀렸고, Pale Blue Dive 때는 물 한 방울 없는 다이브라는 말을 가지고 장난쳤다. 그런데 Bleed는 첫 줄부터 목을 잡았다. Glass in my throat. 그 다음에 삼킨 채로 웃어. 너무 직접적이라 촌스러워질 수 있는 문장인데, 보컬이 그걸 과하게 밀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긁지도 않고, 크게 벌리지도 않았다. 그냥 너무 가까운 자리에서 또렷하게 말했다. 그래서 듣는 쪽이 더 민망해졌다. 노래가 난리 치면 사람은 방어할 수 있다. 노래가 조용히 지나가면 방어할 구멍이 줄어든다. 치사한 방식이다.

스토리에 제일 먼저 올라온 건 해석이 아니라 줄이었다.

한두 줄. 목, 유리, 웃음. 화면 위에 얹으면 너무 잘 보이는 단어들. 이런 줄은 위험하다. 잘못하면 중2병이라며 바로 잘린다. 실제로 그런 말도 곧 나왔다. “너무 노린 문장 아니냐.”, “팬들이 과하게 붙일 듯.”, “또 예쁜 척 무거운 가사냐.” 다 맞을 수 있는 말이다. 좋은 문장은 늘 의심을 데리고 온다. 의심이 안 붙는 문장은 대개 덜 잡힌 문장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의심하면서도 그 줄을 다시 복사했다는 점이다. Bleed는 거기서 첫날 일을 이미 반쯤 해냈다.

누군가는 Glass in my throat만 올렸고, 누군가는 삼킨 채로 웃어를 띄어쓰기 없이 붙였고, 누군가는 목에유리라고 한 단어처럼 썼다. 몇몇은 영어 줄을 틀렸다. glass on my throat, glass in ma throat, 그라스 인 마이 목 같은 낙서가 같이 굴렀다. 그런데 이런 틀림이 오히려 곡을 더 멀리 보냈다. 정확한 인용은 저장되고, 틀린 인용은 친구에게 간다. 참 성의 없고 참 빠른 방식이다.

사운드는 생각보다 밝았다. 제목만 보면 훨씬 눅눅하고 어두운 쪽을 예상하기 쉬운데, 실제 1분은 탁하게 꺼지지 않았다. 신스는 얇고 맑게 벌어졌고, 기타는 번쩍이기보다 문틈 안쪽을 짧게 긁었다. 드럼은 터지지 않았다. 킥이 낮게 엎드려 있고, 스네어는 마른 벽을 한 번 툭 치고 사라지는 정도였다. 베이스는 휴대폰 스피커로는 거의 그림자처럼 지나가다가 이어폰에서야 바닥을 만든다. 보컬은 앞에 있는데, 앞에 나와서 호소하는 쪽이 아니라 벽 바로 안쪽에 붙은 소리처럼 들렸다. 가까운데 들어갈 수는 없는 소리.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from in here를 말했다. 안쪽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본인이 바깥에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아주 성가신 곡이다.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은 뒤늦게 말이 바뀌었다. 휴대폰 스피커로 들었을 때는 문장만 보였는데, 이어폰으로 들으면 바닥이 얇게 움직였다. 킥이 큰 게 아니라 나가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고, 베이스는 앞에서 으르렁대는 대신 방 안쪽 가구처럼 낮게 있었다. 이 차이가 D-3의 말투를 더 갈랐다. 가사만 보는 사람은 과하다고 했고, 소리까지 다시 들은 사람은 과한데 눌려 있어서 버틴다고 했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둘 다 짜증나게 맞는 말이었다.

휴대폰 스피커로만 들은 사람과 이어폰을 꽂은 사람이 말도 다르게 갈렸다. 스피커 쪽은 줄과 보컬만 가져갔고, 이어폰 쪽은 뒤에 깔린 압력 이야기를 했다. 둘이 같은 곡을 들었다고 보기엔 서로 너무 다른 말을 했지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1분짜리 프리뷰는 원래 이렇게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첫 줄만 가지고 가고, 누군가는 킥 하나 때문에 다시 누른다.

트위터는 웃기려고 하다가 자꾸 실패했다.

그래도 완전히 조용해지지는 않았다. 인터넷은 장례식장에서도 밈을 찾는 곳이다. 다만 이날의 농담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먼저 온 건 복사와 멈춤이었다. Glass in my throat를 올린 사람, 삼킨 채로 웃어만 캡처한 사람, Fifty doors 때문에 자기 현관을 찍은 사람. 그런 것들이 같은 시간대에 섞였다. 이 곡의 이상한 힘은 거기 있다. 농담이 붙어도 중심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웃기려는 말이 곡을 벗기지 못하고, 오히려 다시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다. 장난이 아예 사라진 게 아니라, 장난을 걸어도 곡이 받아 주지 않는 날.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한 말을 했다. 병원부터 가세요, 관리사무소 부르세요, 문 닫아 주세요 같은 드립이 돌았지만, 그 밑에는 다 같은 말이 있었다. 이거 좀 세다. 그런데 그 말을 정면으로 쓰면 지는 것 같으니까 다들 문짝과 목과 유리를 빌려 왔다. 사람들은 곡보다 자기 체면을 먼저 챙긴다. 곡이 좋은지 아닌지보다 그걸 인정하는 방식이 더 복잡하다. 귀찮게도.

디시에서는 당연히 싸움이 났다.

가사 과하다, 아니 보컬이 눌러서 산다, 문 50개가 뭐냐, 해석충들 밥상 받았다, 그런 거 다 빼고 드럼만 들어라, 라이브나 가져와라. 거기서는 제목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블리드블드, 브리드, 피흘리는거가 되고, 밴드 이름은 글래시보다 괄호가 빨리 먹혔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름을 줄여 부르기 시작하면 이미 조금 들어온 것이다. 친절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다. 디시는 대체로 귀찮을 때 가장 정확해진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욕하면서도 오래 붙잡혔다는 점이다. 디시는 곡이 애매하면 욕하고 끝낸다. 곡이 걸리면 욕하면서 오래 싸운다. 참 친절하지 않은 기준인데, 이상하게 정확하다.

더쿠에서는 문장 복사가 많아졌다.

어제는 훅을 따라 했다면 오늘은 줄을 옮겼다. 삼킨 채로 웃어, Fifty doors, from in here. 길이도 다르고 온도도 다르다. 누군가는 너무 과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과한데 보컬이 눌러서 산다고 했다. 이 플랫폼의 미묘한 장점은 여기서 나온다. 부담스럽다는 말이 꼭 싫다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좋지만 부담스럽다. 부담스럽지만 다시 듣는다. 그런 모순을 꽤 오래 들고 간다.

더쿠의 두 번째 흐름은 멤버가 아니라 보컬 방식으로 갔다. 아직 이름은 안정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금발보컬, 흰기타 그 사람, 그 낮게 말하는 사람 정도로 불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예쁘다보다 안 짜낸다였다. 이 말은 대충이지만 핵심을 건드린다. Bleed가 세게 보이는 이유는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을 들고도 목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다. 현실 댓글은 그걸 “안 짜냄”, “안 울어서 좋음”, “담담한 척 아닌데 담담함” 같은 말로 퉁친다. 그 투박함이 오히려 정확했다.

밤이 되자 라이브 이야기가 더 선명해졌다. Bleed는 음원에서 좋을수록 무대에서 의심을 부른다. 이 낮은 압력, 이 또렷한 딕션, 이 문틈 같은 기타, 이 안 터지는 드럼을 실제로 살릴 수 있느냐. 사람들은 아직 공식 멤버 표면을 받지 못했다. 누가 정확히 무엇을 맡는지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더 묻는다. 보컬은 저 사람 맞지? 드럼 치는 사람은 누구냐. 건반 쪽은 라이브에서 신스 그대로 하냐. 빨간 기타로 이 곡 긁으면 어떠냐. 베이스는 왜 아직 그림자처럼 들리냐. 이 질문들이 넓어지는 순간, 글래시는 처음으로 보컬 하나짜리 화제에서 밴드 쪽으로 밀려난다. 좋은 의미로. 당연히 더 피곤한 의미로도.

숏폼에서는 문짝 드립이 늦게 붙었다.

Fifty doors / and you’re at forty-nine은 너무 커뮤니티용 숫자였다. 누군가는 도어락 소리에 붙였고, 누군가는 엘리베이터 문에 붙였고, 누군가는 자기 회피성 성격에 붙였다. 얄팍해 보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가장 강한 줄은 늘 짧은 영상으로 잘린다. 어떤 영상은 진지했고, 어떤 영상은 장난이었다. 둘 다 Bleed의 반응권 안에 있었다. 이 곡은 한쪽만 허용하지 않았다. 웃기다가 찔리고, 찔리다가 웃겼다. 그래서 말이 길어졌다.

짧은 영상이 도는 동안, 긴 글 비슷한 것도 조금씩 나왔다. 그런데 그 긴 글도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1분만 듣고 팀을 확정하는 사람은 현실에도 많지만, 그런 사람들 말만 모아 놓으면 페이지가 바보가 된다. 좋은 쪽도 미심쩍고, 싫은 쪽도 계속 확인한다. Bleed는 그 중간에서 말이 길어지게 만들었다.

밴드 쪽 사람들은 더 까다롭게 굴었다. 오늘 곡이 제일 인상적이라는 말과, 그래서 더 라이브를 봐야 한다는 말이 같이 나왔다. 가사가 앞에 선 곡일수록 무대에서는 보컬 호흡이 들통난다. 드럼이 터지지 않는 곡일수록 작은 흔들림이 더 잘 보인다. 기타와 신스가 뒤에서 얇게 받치는 곡일수록 공간이 나쁘면 바로 납작해진다. 이건 호감의 다른 얼굴이다. 관심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따지지 않는다. 따지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이미 걸린 걸 모른다.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앞선 공개물도 조금 다르게 읽혔다. D-14의 깨끗한 사진, D-7의 파란 티저, D-6의 낮은 웃음, D-5의 물 없는 다이브, D-4의 가까운 접촉. 전부 Bleed 뒤에서 살짝 이상해졌다. 좋은 네 번째 트랙은 앞의 세 곡을 단순한 예고편으로 만들지 않고, 이미 본 것들을 다시 의심하게 한다. D-3은 그 일을 했다. 사람들은 “아, 그래서 처음부터 깨끗했나.” 같은 말을 했다. 아직 전곡을 들은 것도 아니고, 공식 정보도 온전히 열린 게 아닌데 벌써 과거를 고쳐 읽는다. 인간은 정말 귀찮은 동물이다. 그래서 재밌다.

비공개 대화에서는 말이 더 솔직해졌다. 공개 타임라인에는 부담스럽다거나 과하다거나 라이브가 걱정된다는 말이 올라왔지만, DM에서는 훨씬 간단했다. “나 오늘 거 제일 좋은 듯.”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 “근데 팬처럼 말하기 싫음.” 이 정도면 거의 병원 예약이 필요하다. 물론 그 병원은 우리도 못 고친다.

그날 밤부터 “이 팀의 보컬”이라는 말이 조금 달라졌다. 아직 이름을 확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고, 누군가는 오래된 커버나 예전 사운드클라우드 조각을 뒤지며 “이 사람 혹시 그 목소리 아니냐.”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공개적인 호명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금발 보컬, 흰 기타 쪽 목소리, 마이크 가까운 사람, 그 사람. 딱 그 정도가 맞다. D-Day 전의 대중은 아직 명찰을 받지 못했다. 명찰도 없이 목소리부터 외우는 일이 먼저 일어났다. 이게 더 현실적이다. 이름을 아는 순간보다 이름 없이 먼저 알아보는 순간이 더 끈질기다.

공식 인스타는 여전히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짧은 캡션, 커버 이미지, 링크. 정보는 적고 반응은 많았다. 답답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많이 풀면 바로 식을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정보가 적은 회사는 대개 욕을 먹는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욕을 먹으면서도 캡처된다. 이것도 참 얄미운 종류의 승리다.

개인 DM은 더 엉망이었다. 공개 댓글에서는 오늘 곡 좋네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메시지창에서는 나 이거 싫은데 또 들음이 더 빨리 나온다. 현실 사람들은 대개 정확한 평가보다 먼저 자기 행동을 들킨다. 클릭했다. 다시 들었다. 링크를 보냈다. 그 셋이면 이미 말보다 솔직하다.

늦은 시간에 사운드클라우드 댓글이 한 번 더 늘었다. 낮에는 첫 줄과 문 숫자가 먼저 잡혔다면, 밤에는 Let it bleed / through the wall / down the hall 쪽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목에 유리”가 셌고, 두 번째 재생부터는 벽과 복도가 들렸다. 후렴이 폭발하지 않아서 오히려 공간이 더 잘 보였다. 보컬이 소리만 내보내고 몸은 안쪽에 남는 느낌. 물론 이런 말을 그대로 공개 댓글에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벽 뒤에서 부르는 것 같음”, “복도 소리”, “방음 안 됨” 같은 말로 낮아진다. 낮아진 말이 더 오래 간다.

D-3의 견제는 더 날카로워졌다.

좋은 건 알겠는데 너무 코어 잡으려는 곡 같다, 가사가 센 문장 모음처럼 보인다, 팬들이 벌써 금발 보컬에게 무슨 사연을 붙인다, 1분만으로 과몰입이 심하다. 이런 말들은 실제로 나올 법했다. 그리고 일부는 맞다. Bleed는 일부러 강한 문장을 앞에 세운다. 하지만 이 곡이 살아남는 이유는 그 문장을 보컬이 과하게 팔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울부짖듯 불렀다면 바로 촌스러워졌을 것이다. 눌러서 지나가니까 더 오래 남는다.

견제 쪽에서도 말이 길어졌다. 단순히 싫다는 말보다 이런 거 팬덤이 너무 좋아할 재료라 피곤하다, 가사 캡처용으로 너무 잘 깎았다, 밴드면 곡으로 말해야지 문장으로 먼저 잡는 거 싫다 같은 말이 붙었다. 그런데 이 말들도 결국 곡을 꽤 꼼꼼히 들은 뒤에 나온다. 그래서 더 재밌다. 관심 없는 사람은 구림 두 글자 치고 지나간다. 오래 까는 사람은 이미 1분을 세 번 들었다. 참 공정하지 않은 재판인데, 음악판은 원래 이렇게 돌아간다.

쇼케이스 200석 이야기도 이때부터 더 아프게 붙었다. 아직 전체 음반도 안 나왔고, 티켓 전쟁도 본격적으로 열린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벌써 상상한다. 이 곡을 작은 방에서 처음 듣는 사람들이 따로 생긴다는 것. 그건 단순한 좌석 수 문제가 아니다. 먼저 목격하는 사람과 나중에 캡처만 보는 사람의 차이다. Mercury 때는 “가고 싶다.”였고, Bleed 뒤에는 “못 가면 억울하다.”가 됐다. 가고 싶다는 욕망이고, 못 가면 억울하다는 박탈감이다. 작은 공연은 그 박탈감을 음악보다 빨리 만든다.

그래도 D-3은 호감만 커지는 날이 아니었다. 피로도 같이 왔다.

매일 한 곡씩 1분만 들려주는 방식 자체에 지친 사람도 있었고, 감각적인 문장을 던져 놓고 해석하게 만드는 태도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피로를 지워 버리면 반응이 얇아진다. 실제 시장에서 신인은 늘 호기심과 피로를 동시에 만든다. 너무 조용하면 묻히고, 너무 잘 보이면 피곤하다. Bleed는 그 피곤한 쪽으로 처음 발을 들였다. 신기한 건, 피곤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내일 곡 제목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Parallel. 아직 듣지도 않은 다음 곡이 이미 비교 대상이 됐다. 지겹다면서 계속 달력 보는 인간들. 그런 인간들 덕분에 음악은 돌아간다.

검색어도 늦게까지 지저분했다. glassh bleed, 글라시 블리드, 글래쉬 블ㄹ, 목에 유리 노래, 문 49 노래, 괄호밴드 피나는거. 공식이 아무리 깔끔하게 써도 사람들은 더러운 손으로 찾아 들어온다. 그게 실패는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부터는 이름을 틀리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정확히 아는 사람보다 대충 기억하는 사람이 더 멀리 옮긴다. 대충 기억한 채로 친구한테 보내니까.

D-3의 끝에서 글래시는 처음으로 장난만으로 지나갈 수 없는 곡을 얻었다.

그게 반드시 더 큰 호감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피곤하다는 사람도 늘었다. 그러나 피곤한 곡이 계속 말해지는 순간이 있다. Bleed는 바로 그 자리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웃고, 문짝 드립을 치고, 해석충을 욕하면서도 끝내 한 줄을 다시 복사했다. from in here.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 아직 문은 다 열리지 않았다. 아직 이름도 다 알지 못한다. 아직 전곡도 없다. 그런데 바깥의 사람들이 벽에 귀를 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노래는 자기 일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