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low
022
낮은 울타리 뒤
페스티벌이 끝난 밤, 노래는 각자의 버스와 방으로 흩어져 사람들 안쪽의 좌석을 조용히 늘린다.
페스티벌은 끝났는데, 사람들은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다. 셔틀버스 창문에는 낮에 탄 먼지가 말라붙어 있었고, 누군가는 그 유리 위에 휴대폰 화면을 겹쳐 놓고 같은 7초를 다시 봤다. 원재경이 엄지를 올리는 장면. 고선우가 웃다가 바로 얼굴을 거두는 장면. 한준희가 베이스를 짧게 치고 뒤로 빠지는 장면. 윤다정이 웃었다고 주장되는 0.5초. 차규빈이 스틱을 모아 쥐고 낮게 인사하는 장면. 영상은 흔들렸고, 음질은 별로였고, 앞사람 머리가 절반을 가렸다. 그래도 다들 멈추지 못했다. 좋은 기록은 선명해서 남는 게 아니라, 자기가 거기 있었다는 핑계를 주기 때문에 남는다.
트위터에는 벌써 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원재경이 내 카메라 본 것 같음. 고선우 웃음 미친 거 아님? 윤다정 생각보다 잘 웃어서 당황함. 차규빈 피크에 이름 쓰라는 거 아직도 웃김. 한준희 슬랩 7초만 잘라 주세요 제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자기 쪽으로 본 장면을 가져갔다. 같은 무대였는데, 집에 돌아가는 손마다 다른 글래시가 들려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버스 맨 뒷자리에서 Blue light를 다시 틀었고, 다정한 쪽은 항상 내가 해에서 화면을 껐다. 회사에서 자기가 먼저 웃던 장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미팅룸 문 앞, 탕비실 정수기 앞, 팀장 메시지에 “네 확인했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낸 뒤 잠깐 굳은 손가락. 노래는 계속 흘러갔는데, 그 사람은 이어폰을 뺐다. 밖에서는 누가 웃고 있었다. 페스티벌은 끝났고, 내일은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별로였다. 좋은데 별로였다.
지하철 2호선 안에서는 누군가 Pale Blue Dive를 틀었다. 처음에는 아까 무대 생각이 났고, 그다음에는 전 애인이 떠올랐고, 세 번째 후렴에서는 전 애인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보였다. 붙잡아 달라는 말을 못 했던 날. 그래 놓고 진짜 붙잡히면 답답해졌을 게 뻔한 자기. 메시지를 열 번 쓰고 한 번도 보내지 않았던 밤. 친구들 앞에서는 “그냥 안 맞았어” 하고 말했지만, 사실은 가까워지는 법을 몰랐다는 쪽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사람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창밖으로 역 이름이 지나갔다. 목적지는 아직 두 정거장 남았고, 노래는 이미 끝난 궤도 밖에 있었다. 웃기지도 않았다. 노래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귀찮게 해도 되나.
한강을 건너는 택시 안에서는 Mercury가 작게 틀렸다. 운전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낮췄고, 뒷좌석의 여자는 휴대폰 밝기를 줄였다. 닿았던 만큼 무겁게 남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누군가와 크게 다툰 것도 아니고, 대단한 사랑을 끝낸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때 자주 연락하던 사람이 있었고, 이제는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가 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닿은 일이 없었던 것처럼 되는 건 아니었다. 무언가를 지우고 나면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지운 자리가 남는다는 걸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여자는 창밖을 봤다. 강물은 어두워 보였고, 다리의 불빛은 가늘었다. 그 사람을 다시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보지 않아도, 이미 바뀐 자신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Mercury는 그런 식으로 치사했다. 후렴은 장난처럼 귀에 붙고, 가사는 늦게 손목을 잡았다.
페스티벌장 근처 편의점 앞에서는 아직 팔찌를 찬 사람들이 얼음컵을 들고 서 있었다. 한 명이 친구에게 말했다. “글래시 좋더라.” 친구가 휴대폰을 켰다. “괄호 어디에 들어간다고?” “our.” “아, 나온다.” 검색창에 뜬 밴드 사진은 너무 차갑고 근사해서, 방금 천막 안에서 들렸던 웃음과 잘 안 맞았다. 피크에 이름 쓰라는 말을 한 드러머와, 파란 조명 아래 정교하게 잘린 실루엣. 둘 다 같은 팀이라는 게 좀 웃겼다. 친구는 Blue light를 플레이했다. 15초쯤 듣더니 말했다. “밴드인데 안 시끄럽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왠지 뿌듯해졌다.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데. 덕질의 뿌듯함은 늘 소유권 없는 재산처럼 군다. 세금도 안 내면서 사람을 바쁘게 한다.
밤 열한 시가 넘어서 갤에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나 글래시 까던 거 취소함
본문은 짧았다.
까던 이유: 이름에 괄호 있음 / 회사 브랜딩 너무 감각 좋은 척함 / 음원 너무 깔끔함
취소한 이유: 라이브 봄
이상입니다
댓글은 더 빨랐다. 가장 정직한 사과문 노래로 패면 답 없음 너 이제 팬임 아니라고 하지 마 다들 그렇게 시작함 글쓴이는 한참 뒤에 답글을 달았다. 팬은 아니고 계속 보는 중임. 그 말에 사람들이 더 웃었다. 계속 보는 중이라는 말이 제일 위험하다는 걸, 이미 빠진 사람들은 너무 잘 알았다.
조금 더 아래에는 다른 글이 올라왔다.
원재경 닫힌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닌 듯
본문은 말끝이 흔들렸다.
Bleed 다시 들으니까 닫은 게 아니라 안 닫았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네
내가 문이라고 생각한 게 걍 유리였던 거 아님?
좀 미안해짐
댓글이 달렸다. 오 또 장문 팬 탄생 닫힌 사람이라고 하면 편하긴 함 열린 채로 둬 / I just didn’t close 이거 한 줄 때문에 다 뒤집힘 글쓴이는 답하지 않았다. 아마 다시 Bleed를 틀었을 것이다. 어떤 말은 답글을 달기보다 한 번 더 듣는 쪽이 빠르다.
새벽 한 시, 비공개 계정들에는 더 부끄러운 말들이 올라왔다. 원재경이 갑자기 너무 가까워서 싫다. 좋다는 뜻임. 패러렐 듣다가 내가 평생 울타리 앞에서만 예의 차린 사람 같아짐. 팬 아니라는 말 이제 못 하겠음. 내가 졌음. 글래시 좋아하면서 제일 빡치는 점: 내가 좀 덜 못되게 살고 싶어짐. 덕질이 사람을 왜 교정함? 이 문장들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다. 스크린샷으로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없으면 팬덤은 깊어지지 않는다. 바깥에 보이는 건 알티와 조회수지만, 안쪽을 채우는 건 결국 비계의 창피한 문장이다. 인간은 공개 계정보다 비공개 계정에서 훨씬 정직하고, 훨씬 못생겼고, 그래서 좀 낫다.
어떤 사람은 블로그를 켰다가 제목만 쓰고 멈췄다. 글래시를 늦게 좋아하게 된 이유. 제목부터 너무 진지했다. 지우려다가 그냥 뒀다. 본문에는 이렇게 썼다. 처음엔 경계했다고. 너무 잘 만든 것처럼 보여서. 밴드 이름, 괄호, 파란 사진, 여섯 곡의 순서까지 전부 너무 의식적인데, 이상하게 그게 음악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포장만 남는데, 글래시는 포장을 벗겨도 곡이 남았다고. 아니, 벗겨 보니 포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곡의 일부였다고. 쓰고 나서 본인은 잠깐 민망해졌다. 이런 문장은 좋아하는 마음이 들킨다. 그래도 저장했다. 공개는 안 했다. 아직은. 사람은 때때로 자기 마음에도 비공개 일정을 둔다.
다른 사람은 카톡으로 친구를 괴롭히고 있었다.
야 글래시 들어 봐
또 시작이냐
이번엔 그냥 노래 좋음
뭐부터
Blue light
오 괜찮네 밝다
밝은데 안 밝음
벌써 싫다
가사 봐
다정한 쪽은 항상 내가 해?
어
아
너도 아 하지
아 하게 되네
그 뒤로 Mercury를 보냈고, 친구는 “엠이알커리?”라고 했다. 그 사람은 하지 말라고 했고, 친구는 이미 따라 하고 있었다. 영업은 그렇게 저급한 농담으로 성공한다. 고상하게 설득하려고 하면 사람은 방어하지만, 멍청한 후렴을 같이 흥얼거리게 만들면 이미 반은 끝이다. 다음날 그 친구는 먼저 Bleed를 들었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데”라고 보냈다. 영업한 사람은 그 문장을 보고 휴대폰을 내려놨다. 맞아. 그건 좀 다르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원재경은 숙소인지 집인지 모를 조용한 방에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있었다. 볼캡은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고, 머리는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팬들이 올린 영상을 오래 보진 않았다. 오래 보면 자기 얼굴부터 너무 낯설어지니까. 대신 짧은 글 하나가 눈에 걸렸다. 예전에 야상곡 커버 들었던 사람인데, 오늘 무대 보니까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진짜로 무대에 있는 게 이상했음. 원재경은 화면을 몇 초 더 봤다. 답을 달 수 있는 글도 아니었고, 답을 달면 안 되는 글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냥 껐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기타를 잡았다가 내려놓지 못하고 한참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손가락은 줄을 누르지 않았는데, 손목에 피크가 닿아 있었다. 선우에게 빌린 피크였다. 돌려줘야지. 그 생각을 했고, 조금 웃었다. 피크에 이름을 쓰라는 규빈의 목소리가 같이 떠올랐다. 웃음이 한 번 더 나왔다.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고선우는 침대 끝에 앉아 알림을 끄고 있었다. 웃는 직캠이 너무 많이 돌았다. 처음엔 안 봤다. 그러다 결국 봤다. 자기가 웃고 있었다. 그것도 꽤 잘. 화면 속의 자신은 자꾸 본인이 아닌 것 같았다. 야외라서 그랬다. 아마. 공간이 열려 있어서. 기타 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 핑계를 몇 개 세워 보다가 관뒀다. 화면 아래 댓글 하나가 보였다. 오늘부터 기타 다시 함. 이유는 말하면 너무 오타쿠 같아서 안 함. 선우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좋아요는 누르지 않았다. 누를 이유도 없었다. 대신 다음날 가방 앞주머니에 피크를 두 개 더 넣었다. 이름은 쓰지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차규빈에게 지고 싶진 않았다. 아주 같잖은 자존심이다. 그래도 고선우는 그런 걸로 굴러간다.
윤다정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공연이 끝난 날에도 파일은 정리해야 했다. 안 하면 내일의 자신이 욕한다. 세트리스트 백업 폴더 이름을 바꾸고, 패치 파일을 날짜별로 나눴다. 그러다 트위터에서 우연히 글 하나를 봤다. 퇴근길이면 Parallel부터 듣는다는 말 듣고 진짜 울 뻔함.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닌 기분. 다정은 글을 끝까지 읽고, 저장하지 않았다. 마음도 누르지 않았다. 대신 다음 공연용 세션 파일을 열어 5번 트랙의 패드 볼륨을 아주 조금 낮췄다. 1.5데시벨. 누가 알아차릴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낮췄다. 그리고 컵을 장비 옆이 아니라 책상 오른쪽 끝으로 옮겼다. 혼자 있는데도 그랬다. 습관이란 참 성실해서, 관객이 없어도 자기 일을 한다.
차규빈은 케이스에서 드럼 키를 빼 다시 작은 파우치에 넣었다. 다 씻고 나서도 손목에 미세한 피로가 남아 있었다. 괜찮았다. 늘 있는 정도였다. 폰 화면에는 누가 캡처해 보낸 글이 떠 있었다. 차규빈은 사람을 안아 주는 타입은 아닌데, 넘어지지 않을 자리에 앉혀 놓는 타입임. 규빈은 그 문장을 보고 잠깐 멈췄다. 민망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말이 커 보였다. 사람을 어디에 앉혀 놓고 말고 할 만큼 본인이 뭘 했나 싶었다. 티슈를 줬고, 오늘 판단하지 말라고 했고, 집에 갈 때 울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돌아갈 말인가. 규빈은 화면을 끄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넘어지면 안 되지.” 본인은 그 말이 웃긴 줄 몰랐다. 그러니 더 규빈이었다.
한준희는 숙소 복도에서 통화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가족에게 공연 얘기를 조금 했다. 좋았다고. 더웠다고. 사람 많았다고. 한국어로 말하다가 중간에 영어가 섞였고, 다시 한국어로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 멜버른 학교 공연 영상을 봤다는 DM을 받았다. 그때 영상 보고 베이스 시작했어요. 준희는 화면을 들고 한참 있었다. 그때 그 영상이라면 아마 얼굴도 잘 안 보였을 거다. 음질도 별로였을 거다. 그런데 누군가는 거기서 시작했단다. 무서운 일이다. 좋은 무서움. 준희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 봐 줘서 고마워요. 저도 그때는 제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요. 너무 길었다. 지웠다. 다시 썼다. Thanks. Means a lot. 보내고 나서 조금 웃었다. 한국어로 길게 쓰면 너무 진심이 들킬 것 같고, 영어로 짧게 쓰면 조금 덜 들킨다. 사람마다 숨는 언어가 있다. 준희에게는 가끔 영어가 그랬다.
다음날 오전, 포매터즈 사무실에는 페스티벌 관련 리포트가 올라왔다. 조회수, 검색량, 언급량, 멤버별 클립 반응, 부정 반응 비율, 다음 공연장 후보. 회의실의 공기는 냉방 때문에 조금 건조했다. 누군가 말했다. “200석은 이제 좀 작아 보이죠.”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숫자는 쉬운데, 숫자가 뜻하는 일은 귀찮다. 공연장을 키우면 더 많은 사람이 보고, 더 많은 사람이 말하고, 더 많은 사람이 틀리게 본다. 그래도 해야 한다. 닿는 일은 늘 그렇게 귀찮은 계산을 데리고 온다. 모니터에는 후보 공연장 세 개가 떠 있었다. 하나는 너무 작고, 하나는 너무 크고, 하나는 애매하게 맞았다. 대개 애매한 게 제일 현실적이다. 회사 사람들은 그 애매함을 오래 봤다.
팬들 쪽에서도 작은 규칙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백스테이지 동선 쓰지 말기. 오래된 영상은 조심하기. 멤버가 다른 팀 공연 보는 중이면 말 걸지 말기. 사진은 찍어도 너무 가까운 건 올리지 말기. 당연한 말 같지만, 당연한 말은 늘 누군가가 한 번 망친 뒤에야 규칙이 된다. 예전 커버 영상 18초가 올라왔다가 지워진 날, 타임라인은 잠깐 서늘해졌다. 보고 싶다는 마음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발목을 잡았다. 누군가는 “그럼 덕질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했고, 누군가는 “오래 보려면 조심하자는 거지”라고 했다. 싸움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글래시 팬들은 대체로 크게 싸우지 않았다. 대신 길게 썼다. 아주 길게. 읽다 보면 상대가 제풀에 지치는 방식. 원재경한테 배운 건지, 원래 그런 사람들이 모인 건지는 모를 일이다.
며칠 뒤, 회사 탕비실에서 한 사람이 종이컵을 들고 말했다. “글래시 알아?” 맞은편 사람이 너무 자연스럽게 답했다. “어, 1은 원재경이고 기타는 고선우. 드럼 차규빈 괜찮고, 윤다정이 사운드 쪽 많이 잡는 것 같고, 베이스 한준희가 멜버른 출신.” 말하고 나서 본인이 더 놀랐다. 상대가 웃었다. “너 팬이네.” 그 사람은 컵을 들고 잠깐 멈췄다. 맞네. 팬이네. 덕질도 이렇게 허술하게 들킬 수 있구나. 품위가 없었다. 좀 억울했다. 다음날 그 사람은 글래시 키워드를 저장했다. 팬계정은 아직 만들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기간이 조금 필요하다.
어떤 팬은 인스타 스토리에 Parallel을 올렸다. 배경은 여름 낮의 보도블록이었다. 글자는 너무 예쁘게 쓰려다 실패했다. 처음엔 그냥 여름 낮 같은 곡인 줄 알았는데, 계속 듣다 보니 내가 늘 울타리 앞에 서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고 나서 바로 다음 스토리를 올렸다. 이상한 말 해서 죄송합니다. 그냥 노래 좋다는 뜻. 3분 뒤 하나 더 올렸다. 근데 진짜 좋음. 친구 두 명이 하트를 눌렀고, 한 명은 답장을 보냈다. 너 또 시작했네. 팬은 답했다. 이번엔 진짜야. 사실 매번 진짜라서 문제다.
또 다른 사람은 Midnight Space를 듣다가 비공개 메모에 한 줄을 썼다. 좋아하는데 잘 모르겠다. 근데 이제 모르는 게 싫지는 않다. 쓰고 나서 지웠다. 오글거려서. 하지만 지운 문장은 대개 남는다. 휴지통이 아니라 몸에. 그 사람은 노래를 다시 틀었다. not gone / just wide가 지나갔다. 방은 어두웠고, 휴대폰 밝기는 제일 낮았다. 창밖에는 새벽 택시가 지나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언가가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이럴 때 사람은 대개 잠을 못 잔다. 좋은 노래는 수면의 적이다. 정말 민폐다.
글래시는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누가 버스에서 Blue light를 끄고 울컥했는지, 누가 Mercury 때문에 오래된 연락처를 지웠는지, 누가 고선우 피크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는지, 누가 윤다정의 1.5데시벨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더 편하게 숨을 쉬었는지, 누가 차규빈의 한마디 때문에 사직서를 하루 늦췄는지, 누가 한준희의 짧은 영어 답장 하나를 캡처해 두고 일주일 동안 열어 봤는지. 밴드는 대체로 그런 걸 모른다. 모르는 채로 다음 곡을 맞추고, 다음 합주를 하고, 다음 공연장을 잡는다. 그래서 밴드는 때때로 잔인하다. 누군가의 인생에 들어와 놓고, 자기는 케이블을 감으러 간다.
며칠 뒤 합주실에서 컵은 또 이상한 곳에 놓였다. 이번엔 준희 것이었다. 윤다정이 보자마자 손을 뻗었다. “쥰, 컵.” 준희가 베이스를 멘 채 고개를 돌렸다. “아, 또요?” “응. 또.” 다정은 컵을 옮겼다. 선우는 페달보드 앞에 쪼그려 앉아 케이블을 끼우고 있었다. “너 진짜 꾸준하다.” 준희가 웃었다. “제 장점이죠.” 선우가 대답했다. “그건 단점이고.” 원재경은 기타를 어깨에 걸며 웃었다. 크게 웃을 타이밍이라, 옆에 있던 선우 팔을 손등으로 툭 쳤다. “어우 야, 둘이 또 시작했네.” 선우가 바로 말했다. “언니도 피크 돌려주세요.” 재경은 잠깐 멈췄다. “아.” 다정이 고개를 들었다. 준희는 벌써 웃고 있었다. 차규빈은 드럼 의자에 앉으며 가방에서 네임펜을 꺼냈다. 아무 말 없이.
이번엔 다섯 명이 동시에 봤다.
규빈이 말했다.
“써.”
침묵은 1초도 못 갔다. 준희가 먼저 터졌고, 다정이 고개를 숙였고, 선우가 “진짜 가져오셨어요?” 하며 웃었고, 재경은 피크를 들고 거의 주저앉을 듯 웃었다. 규빈은 네임펜 뚜껑을 따서 재경에게 내밀었다. “잃어버리잖아.” 너무 평평한 말이라 더 웃겼다. 웃음이 합주실 벽에 부딪혔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각자 자기 자리로 갔다. 드럼이 카운트를 세고, 베이스가 낮게 들어오고, 기타가 한 칸 위를 긁고, 신스가 얇게 깔리고, 보컬이 가장 늦게 앉았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아직도 글래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글래시가 다음 마디를 맞추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뻔하다. 둘 다다. 아주 귀찮게도, 둘 다 맞다.
그날 밤 누군가는 새 글을 썼다.
글래시 좋아하고 나서 뭐가 달라졌냐면 딱히 없음. 회사 가고, 밥 먹고, 대충 웃고, 집 와서 씻고, 내일 입을 옷 생각하고, 또 잠 안 와서 노래 틀고. 근데 아주 조금 달라진 건, 내가 왜 대충 웃는지 가끔 생각하게 됨. 이 정도면 충분히 귀찮은 변화임. 고맙다. 아니 안 고맙다. 아무튼 다음 곡 주세요.
좋아요가 천천히 붙었다. 누군가는 그 글을 보고 웃었고, 누군가는 저장했고, 누군가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읽었다. 글래시는 그날도 자기 이름처럼 투명한 시간을 지나갔다. 정면에서는 잘 안 보이고, 한 발 떨어져야 보이는 것들. 한낮에 본 밴드가 각자의 밤으로 넘어가서,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남았다.
다음 공연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좌석은 이미 늘어나고 있었다.
사람들 안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