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ATTERZ

World Flow

021

첫 페스티벌

무대 밖의 페스티벌은 물품보관소와 돗자리와 귀갓길에서 글래시를 몇 시간짜리 이야기로 늘린다.

무대에서 멀어질수록 이야기는 늘었다. 페스티벌이란 원래 그런 판이다. 공연은 삼십오 분이었는데, 그날의 글래시는 물품보관소 줄과 푸드트럭 앞과 팔찌 교환존과 돗자리 위와 화장실 줄에서 몇 시간짜리로 늘어났다.

글래시 보기 전에 물품보관소 줄 서 있었는데 앞사람이 원재경 목소리 듣고 죽으면 내 가방 찾아 줘 이러고 있었음 친구가 죽으면 못 찾지 하니까 그럼 니가 가져 이럼 락페 우정 미쳤다푸드트럭 줄에서 뒷사람이 빨간 기타 언니가 나 봤다니까? 하니까 친구가 너 말고 객석 봤겠지 함 그분 대답: 객석 안에 내가 있잖아 이 논리 반박 못 함팔찌존에서 스태프가 어떤 팀 보러 오셨어요 물었는데 글래시요 하니까 아 괄호 있는 팀? 함 스태프도 괄호로 인식 중얼음물 사러 갔다가 Bleed 인트로 들려서 물 들고 뛰어옴 뛰다가 반쯤 흘림 내가 Bleed 됨닭강정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에서 한준희 슬랩 얘기만 10분 함 닭강정보다 쫀득했다는 발언 나옴 근데 맞말이라 조용히 들음

돗자리존은 돗자리존대로 겪었다. 누워 있던 사람들이 Mercury에서 상체를 일으켰고, Bleed에서 일어섰고, Midnight Space에서는 들고 있던 것들이 멈췄다.

돗자리존에서 누워 있다가 Mercury 듣고 상체 일으킨 사람들 많았음 M.E.R. 하자마자 하나둘 일어남옆 커플 남자분이 처음엔 누워서 폰 보다가 Bleed 시작하니까 앉음 후렴 때 서 있음 끝나고 여자친구한테 저 팀 뭐야? 함 여자친구가 내가 보자고 했잖아 그 후 침묵돗자리에서 과일 먹던 사람이 Midnight Space 때 포크 든 채로 멈춰 있었음 수박 한 조각이 공중에서 대기함 그 곡이 수박도 멈추게 함

집에 가서야 자기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락페의 오래된 전통이다. 현장에서는 눈이 바빠서 놓치고, 집에서는 손이 떨려서 놓친 걸 확인한다.

나 공연장에선 원재경 엄지 못 봤는데 집 와서 내 영상 보니까 내 앞쪽 팬한테 엄지 해줬더라 현장에서 놓친 팬서비스를 내 폰이 대신 받음 내 폰 오늘 계탔다고선우 웃은 거 현장에서는 못 봄 왜냐면 나는 그때 소리 듣고 입 벌리고 있었음 집 와서 영상 보니까 웃고 있었음 나 왜 그때 눈을 귀로 썼냐차규빈 필인 직캠 찍은 줄 알았는데 내 영상에 내 소리지르는 소리만 들어감 차규빈은 안 보이고 내가 와씨 하는 목소리만 선명함 자기혐오 시작윤다정 입꼬리 찍은 줄 알고 확대했는데 햇빛 반사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임 근데 나는 봤어 못 믿겠으면 어쩔 건데 내 기억이 4K임한준희 슬랩 구간 찍었는데 너무 흥분해서 카메라가 하늘 찍고 있음 구름이 쫀득했다

눈 마주침 논쟁은 그날 밤의 국민 종목이었다. 원재경이 객석을 훑는 곡이 여섯 개였고, 카메라는 수백 대였다. 그러니 산수로는 아무도 눈이 마주치지 않았고, 체감으로는 전원이 마주쳤다.

멤버들은 칼퇴하지 않았다. 첫 페벌이었고, 같은 라인업에 듣고 싶은 팀들이 있었다. 그래서 목격담이 생겼다. 사진보다 목격담이 많았다. 팬들이 찍는 대신 지켜 주기로 한 쪽에 가까웠으니까.

원재경 모자 쓰고 뒤쪽에서 다른 팀 무대 보는데 노래 나올 때 입모양으로 따라 하는 것 같았음 확대 안 함 그냥 봤다는 것만 말함고선우 다른 밴드 기타 솔로 나올 때 팔짱 끼고 보다가 끝나니까 웃으면서 박수침 아니 이 사람 진짜 기타 좋아하는 사람 맞네차규빈은 다른 팀 드러머 보면서 진짜 집중하더라 누가 옆에서 말 걸었는데 한 박 늦게 대답함 그 사람도 드럼 앞에서는 관객이구나 싶었음윤다정이랑 한준희 같이 서서 뭐 먹고 있었는데 준희가 뭐 말하니까 다정이 고개 저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직장 동료 같았음글래시 멤버들 끝나고 바로 안 갔더라 다른 팀 무대 보는 거 보고 괜히 좋았음 아 얘네도 음악 보러 남는 사람들이구나 싶어서

그 사이에서 목격담 하나가 조금 다르게 돌았다.

팬들 쪽에도 그날 처음으로 규칙 비슷한 게 생겼다. 공지가 뜬 것도 아닌데, 서로 말리는 말들이 돌았다. 동선 공유하지 말자. 다른 팀 무대 보는 멤버는 그냥 두자. 사진 찍혀도 너무 가까운 건 올리지 말자. 땀에 절어 있으면서 문장만 회의록이었다.

글래시 끝나고 팬들 갑자기 바닥 쓰레기 줍는 거 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컵 주움동선 공유 금지한다고 서로 말리는 건 좋은데 말투가 다 너무 정중해서 더 웃김 혹시 해당 위치 언급은 지양하면 좋을 것 같아요 락페장에서 이러고 있음어떤 분이 멤버들 다른 팀 무대 보러 남은 것 같으니까 가까이 가지 말자 했더니 옆 사람이 그럼 멀리서 볼까요? 다 같이 1초 정적 결국 아니요 그냥 공연 봐요로 합의직캠 원본 올릴 때 크롭 여부로 거의 회의함 다른 관객 얼굴 가려 주세요 고화질 원본은 링크로 질서 있는 광기

갤은 그걸 또 물었다. 잘한다고 하면서 놀리고, 놀리면서 인정했다.

글래시 팬들 쓰레기 줍는 거 컨셉 아님? 컨셉으로 쓰레기 줍는 거면 좋은 컨셉이지조용한 팬덤이라더니 앞줄 점유율 높았음 조용한 점유율 ㅅㅂ함성은 작은데 직캠 수가 많음 말보다 저장용량으로 팬질함

관객 구성도 처음으로 제대로 섞였다. 단공 이백 석과 Room 02 사백팔십 석을 놓친 사람들, 커뮤 관망층, 다른 팀 팬, 플레이리스트 청자, 빨간 기타가 궁금해서 온 사람. 얄팍한 호기심과 깊은 집착이 같은 펜스 앞에 섰다. 시작 전에는 앞쪽만 밀도가 있었고, Blue Light에서 고개가 들리고, Mercury에서 중간층이 붙고, Bleed에서 돗자리존이 일어났고, Midnight Space 때는 나갈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이 그대로 남았다. 큰 판이면 묻혔을 변화가, 작은 판이라 눈에 보였다.

생각보다 사람 많지 않음? 글래시 보러 온 사람들 꽤 있네서브스테이지인데 앞쪽 밀도 뭐임 얘네 신인 아니었냐Room 02 실패한 사람들 여기 다 온 듯 나 포함글래시 시작 전부터 앞줄 분위기 다르던데 조용한데 개빡세게 기다리는 느낌

물론 바로 견제도 왔다. 작은 페벌 서브에서 사람 많았다고 호들갑이냐는 말. 반박도 바로 왔다. 처음 나온 외부 무대에서 자기 시간대에 사람을 세운 게 포인트라는 말. 갤의 판정이 제일 현실적이었다. 호들갑 떠는 거 웃기긴 한데, 신인 첫 외부 공연이면 호들갑 떨 만함. 둘 다 맞음. 대단한 국민적 사건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소하지도 않았다. 작은 판에서 확실히 눈에 띈 날. 그날 집에 가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두 가지가 같이 남았다. 글래시 팬 많네, 그리고 글래시 생각보다 좋네. 하나는 화제성이고 하나는 음악이었다. 둘이 같이 남았으면 된 거였다.

무대 위의 사람들도 생활을 흘렸다. 클립으로 잘린 건 노래만이 아니었다.

내 영상에 원재경이 노래하다가 머리카락 입에 붙어서 한 소절 끝나고 웃으면서 떼는 거 찍힘 너무 사람이라 좋음 그 와중에 음 하나도 안 흔들림 짜증 나게 프로임원재경 멘트하다가 바람 때문에 마이크에 바람소리 들어가니까 아, 바람도 같이 하네요 하고 웃음 그 뒤 객석 개터짐고선우 피크 떨어뜨릴 뻔하다가 발로 밀어서 자기 쪽으로 가져오는 거 찍혔는데 기타 치는 사람들은 발까지 악기임?차규빈 곡 사이에 스틱 하나 떨어뜨렸는데 표정 변화 0 바로 예비 스틱 집음 스틱이 떨어진 게 아니라 신뢰가 떨어졌다가 바로 복구됨윤다정 노트북 화면에 햇빛 들어와서 손으로 가렸다가 옆 스태프가 가림판 대주니까 엄청 짧게 고개 숙임 그 0.2초 예의가 너무 윤다정 같았음한준희 베이스 스트랩 꼬인 거 무대 올라가면서 알아채고 걸으면서 풀었음 나였으면 그 자리에서 인생 접었는데 얘는 웃으면서 품

더위와 배터리와 화장품도 같이 공연을 했다.

글래시 보려고 앞줄 버티다가 쿠션팩트 녹음 원재경은 햇빛 아래서 더 예쁜데 나는 인간 샤브샤브 됨 불공평하다보조배터리 8퍼 남았는데 원재경 엄지 클립 찍고 사망함 후회 없음 폰은 갔지만 역사 자료를 남김친구가 닭꼬치 들고 있었는데 Bleed 들어가자마자 먹는 걸 멈춤 닭꼬치가 식었음화장실 줄에서 글래시 얘기만 3팀이 함 한 팀은 원재경 목소리 한 팀은 고선우 웃음 한 팀은 한준희 베이스 나는 속으로 윤다정도요... 하고 있었음

밤이 되자 인스타 스토리가 줄지어 올라왔다. 무대 멀리서 찍은 사진에 아까 괄호 밴드 좋았음. 엄지 클립에 나 아님, 내 앞사람임, 근데 내가 다 설렘. 고선우 웃는 사진에 빨간 기타 언니 누구. 돗자리 위 음료 사진에 Bleed 듣다가 다 식음. 그리고 집 가는 지하철 사진에, 오늘 글래시 좋았다, 단공 가고 싶음. 스토리는 짧고 예뻤다. DM은 더 지독했다. 야 나 오늘 글래시 봤는데. 영상 보낼게 너도 봐. 그리고 제일 무서운 말. 다음에 같이 갈래?

귀갓길은 각자 달랐고, 이상하게 같았다.

셔틀버스에서 앞자리 두 명이 글래시 얘기함 원재경 목소리 진짜 좋더라 / 난 기타 언니 / 빨간? / 응 이 대화 듣고 나도 끼고 싶었는데 참음 사회성 발휘함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직캠 보고 있었는데 소리 새어 나와서 Mercury 훅 들림 옆사람이 아 오늘 그 팀? 함 실시간 입소문 너무 무섭다집 가는 길에 친구랑 말없이 각자 직캠만 봄 같이 있었는데도 각자 다른 글래시 봄택시 기사님이 오늘 공연 보고 오셨어요? 하길래 네 했더니 젊은 사람들 좋겠네 하심 저 오늘 원재경 엄지 봤는데요 기사님은 모르시겠죠 삶은 외롭다

그날의 후일담 중에 제일 오래 남은 건 결국 이 말이었다.

글래시 오늘 예뻤고 잘했고 다 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애들이 땀 흘리고 물 마시고 케이블 피하고 스태프한테 인사하고 다른 팀 보면서 박수쳤다는 거 사람이라 좋았다

오늘 글래시가 좋았던 이유: 무대 위에서는 각자 너무 선명했는데 무대 밖에서는 그냥 페벌 온 밴드 같았음 그 두 개가 같이 있으니까 진짜가 됨

포매터즈는 뒤에서 숫자를 봤을 것이다. 팬만 온 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이 멈췄다는 것. 다음 고민은 이제 단공을 몇 석으로 키우느냐가 아니라, 어느 판에 올려도 몇 곡 안에 사람을 세울 수 있느냐가 된다는 것. 그날은 그 답을 어느 정도 얻은 날이었다. 그리고 팬들에게는 새로운 지옥이 예약된 날이기도 했다. 다음엔 더 큰 데를 잡아야 하고, 그러면 티켓팅 지옥이 또 열린다. 진짜 축하한다.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