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low
011. D+14 (1)
D+14 (1)
쇼케이스 당일 낮, 티켓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두가 첫 라이브의 성패를 기다리며 같은 시간대에 묶인다.
D+14 낮, 공연 전
공연 전부터 안쪽은 시끄러웠다. 바깥 세상은 평온했고, 표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만 쓸데없이 바빴다. 관심 없으면 오늘 못하면 끝도 안 쓴다.
이때 쇼케 가는 사람들은 벌써 반쯤 기자 취급을 받아. 본인은 그냥 공연 보러 가는데 인터넷은 임무를 줘. 너무하긴 한데 이게 200석의 무게야. 희소한 목격자는 곧 권력이거든. 아주 피곤한 권력.
입장 전 현장 분위기
현장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해. 라이브홀 외부, 작은 포스터, 파란 조명 들어온 로비, 4MATTERZ 로고, MD는 아직 크지 않고 아주 적게. 여기서 사람들 반응은 “작다”, “가깝다”, “진짜 첫공 같다”로 간다.
관객 얘기도 돈다. 향 좋은 사람 많다, 혼자 온 사람 많다, 음악하는 사람 같은 사람 보인다, 카메라 든 사람 많다. 이런 말은 늘 정확한 듯 틀리고, 틀린 듯 묘하게 맞다.
공연 시작 직전 온라인
공연장 안에서는 폰 사용 안내가 뜨고, 밖에서는 사람들이 실시간 대기해.
이때 제일 현실적인 말은 이거다.
맞다. 이제 침묵은 불가능하다. 작은 홀인데 인터넷 안쪽은 전혀 작지 않았다.
이런 건 처음이라
첫 공연이라는 건 대개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다.
시작. 데뷔. 첫 인사. 드디어. 입에 올리는 순간 어깨부터 뻣뻣해지는 말들. 그런데 실제 현장은 그보다 훨씬 성가시다. 마이크팩 선이 티셔츠 밖으로 밀려나오지는 않는지, 라이저 앞쪽이 킥 한 번에 같이 딸려 오지는 않는지, 맥북이 제발 오늘 쓸 버전을 알아서 찾아 주는지. 뭐, 대개 그런 것들. 영광이고 나발이고, 첫공은 일단 사고가 없어야 미덕이다. 사람은 멋진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만, 현장은 그 멋진 순간이 사고 없이 지나가도록 낮은 곳부터 쓸고 닦는다.
EP가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간 지 삼 주가 지났다. 여섯 곡. 다섯 명의 이름과 포지션. 분위기 컷 한 장씩. 얼굴은 나왔는데, 연주하는 모습은 없었다. 소리는 너무 깨끗했다. 그 깨끗함 때문에 먼저 긁힌 쪽은 인디 커뮤니티였다. 세션 아니냐. 기획 밴드 아니냐. 이렇게 다듬어진 소리를 내는 팀이 작은 홀에서 버티겠냐. 말은 여러 갈래로 돌았고, 끝은 거의 비슷했다. 라이브를 봐야 안다. 이 문장은 일종의 판정 유예였고, 동시에 티켓팅 버튼 위에 얹힌 손가락이기도 했다.
백금발이 제일 자주 걸렸다. 레이블, 작사 크레딧, 사진 속 위치. 가사가 좋다는 말 뒤에는 본인이 쓴 게 맞느냐는 말이 붙었고, 목소리가 좋다는 말 뒤에는 튠을 얼마나 걸었느냐는 말이 따라왔다. 기타리스트를 알아본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소규모 클럽에서 치던 사람 아니냐고. 드러머 쪽에서도 이름이 돌았다. 키보디스트의 작업 이력을 뒤지는 글도 올라왔다. 좋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했고, 아니라는 사람들은 꽤 크게 아니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이상하게 열심이었다. 별 관심 없다면서 여섯 곡을 순서대로 들은 사람들. 팬 아니라고 못 박은 뒤 쇼케이스 예매 창을 새로 고침하던 사람들.
첫 공연 티켓이 열렸을 때, 이백 석은 사흘 만에 찼다. 진짜 보려고 산 사람이 반. 진짜인지 보려고 산 사람이 반. 멤버들은 그 보름 동안 조금 더 조용해졌다. 원래 조용한 사람들이었는지, 조용해진 사람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날의 객석은 응원석이라기보다 검문소에 가까웠다. 꽃다발보다 먼저 온 건 호기심이고, 호기심보다 먼저 앉아 있던 건 의심이었다.
포매터즈 스태프들은 오전부터 라이브홀을 내내 휘젓고 다녔다. 누군가는 포토월 각도를 맞추고, 누구는 객석 맨 앞줄 테이프를 다시 붙인다. 또 다른 누구는 무전기로 보컬 마이크 여분을 찾아다닌다. 라이브홀 입구에는 아직 아무도 없는데, 안쪽에서는 이미 수십 개의 작은 일이 제 순서를 요구하고 있었다. 일찌감치부터 모이기로 한 건 꽤 옳은 처사였다. 드디어 요리 시작인데, 칼부터 잘 드는지 봐야 하니까. 애니웨이. 사람 사는 꼴 다 똑같고, 공연 현장도 예외는 없다.
대기실에는 다정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키보드는 이미 무대 위에 올라가 있고, 들고 온 거라고는 노트북 가방 달랑. 손이 가벼운 게 좀 이상했다. 십 년 가까이 작업하면서 맨손만 달랑 들고 현장 간 적이……. 응. 거의 없네. 두 눈을 홉뜨고 있다가 얼른 테이블 앞에 앉았다. 맥북이 열린다. 그리고 패치 폴더 스캔. v5. v5. v5. 여섯 곡 다 v5. 그래도 한 번 더. 손가락이 트랙 패드 위에 떠 있다. 어제 자기 전에도 봤고, 오는 길 차 안에서도 봤고, 방금 또 봤는데도. 이 횟수가 늘어나는 건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인 걸 안다. 그래도 또 본다. 어쩔 수 있나. 케이스 끄는 소리와 의자 빼는 소리가 났다. 그 사이를 가르며 선우가 들어선다. 거추장한 인사 없이, 곧바로 착석. 또 봐? 그놈의 패치, 또 보고 있냐는 거다. 다정은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답했다. 응.
“몇 번째야.”
“세는 거 그만뒀어.”
“세고 있던 거잖아.”
그제야 화면에서 눈이 떨어졌다. 선우는 케이스도 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손등 하나. 그 위에 다른 손 하나. 잠을 안 잔 얼굴. 잤어도 짧게 잔 눈치. 구태여 묻지는 않기로 한다. 나만 해도 어젯밤에 다섯 시간 잤고, 그 다섯 시간이 다섯 시간 같지도 않았으니까. 케이블 가져왔어? 어. 두 개. 보조까지. 그 정도면 됐다. 걱정은 각자 하고, 필요한 건 서로 확인하는 정도. 글래시는 아직 그 거리에서 굴러간다.
그때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가 들어왔다. 한준희다. 덜그럭. 신발 앞코가 의자 다리 하나를 쳤다. 시선이 몰린다.
“Oh, shit. sorry.”
“의자 모자라요.”
“하나 더 가져와.”
“네.”
막내는 바쁘다. 얼른 가지러 가야 하니까. K-유교 앞에서는 호주고, 뭐고, 없다. 시선 재차 맥북 화면에 가 닿았다. v5. v5. v5. 혹시 몰라. 한 번 더 봐. 규빈이 들어오는 소리를 거의 한 귀로 듣는다. 그 언니는 늘 그렇다. 그냥, 어느 순간 거기에 있는 사람이라서. 뒤늦게 고개를 들자, 이미 자기 자리에 떡하니 앉아 계시는 게 보였다. 담담한 얼굴로 스틱 케이스 지퍼를 만지고 있는 모습. 거기에 대고 짧게 인사했다.
“언니.”
“응.”
그게 다였다. 마지막으로 재경이 들어온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출근 풍경이다. 십 분 더 일찍 와도 되는 사람이 구태여 마지막에 들어오는 시간. 다정은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쨌든 사색은 길지 않다. 대기실이 생각보다 작은 탓에, 올라오던 잡념마저 금세 잊고 지나친다. 다시 대기실을 둘러다본다. 거울이 한쪽 벽을 거의 다 차지한 곳. 테이블 위에는 생수와 과자 봉지가 놓여 있고, 의자는 이제 막 일곱 개가 된 참. 그 뒤로 기타 케이스 둘과 베이스 케이스 하나가 들어온다. 장비들도 있다 보니 의자 몇 개쯤 끌어다 쓰는 건 일도 아니다. 일단 두 개쯤 빼고 나니, 사람 앉을 자리는 거의, 뭐, 체면만 남긴 상황. 다섯 개로 딱 떨어진다. 케이스를 벽에 기대려던 선우가 뭐 씹은 얼굴이 됐다.
“이거 여기 두면 나중에 못 꺼내.”
다정이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으며 대기실을 둘러본다. 그럼 어디. 규빈이 안쪽 의자 하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쪽. 의자 하나 빼자.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재경이 제 의자를 끌어다 뺀다. 그 뒤에는 어차피 서 있는 게 편하다는 논리가 따라왔다. 동선이 나아졌다는 판단이 함께 남았다. 글래시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말로 붙는 대신, 물건이 제자리에 들어가는 방식. 똑똑. 일제히 고개가 돌아간다. 콘텐츠팀 직원이다. 혹시, 들어오는 컷만 짧게 딸 수 있냐고. 선우가 먼저 반응했다.
“이미 들어왔는데요?”
“다시 들어와 주셔도 되고요.”
“비하인드 이렇게 찍는구나…….”
재경이 마스크를 벗었다.
“그럼 저희가 처음 들어온 척하는 걸 처음 찍는 걸로. 그러면 되죠?”
“네, 그거 좋습니다.”
직원이 활짝 폈다. 됐지? 재경이 선우를 보고 슬쩍 눈짓했다.
“사회생활 쩐다.”
“다 그렇지.”
뒷말은 준희가 받아쳤다. 되게 현실적이네요. 그러자, 규빈이 스틱 케이스를 테이블에 올린다. 현실 맞잖아. 그래, 맞다. 그러니까, 그렇다. 이것이 첫공의 첫 거짓말, 아니, 다정 말로는 재연이었다. 재연이라니. 그건 더 싫은데. 그래도 몸은 착실하게 문 밖으로 향한다. 몸은 착실하게 문 밖으로 향하고, 자연스러운 컷을 위해 부자연스러운 재입장을 했다. 선우가 문을 나서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클럽에서는 안 했는데. 아무도 안 들었다. 들었어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회사 붙은 밴드의 산뜻한 첫 업무다.
뒤이어, 사운드 체크는 열두 시 이십 분에 시작됐다. 규빈이 제일 먼저 드럼 뒤에 앉았다. 스툴 높이를 아주 조금 낮추고, 라이저 앞쪽을 발로 눌렀다. 한 번. 두 번. 표정 변화가 없다. 이건 좀 나쁘다는 뜻.
“앞쪽 흔들려요.”
무대팀 스태프가 올라왔다. 어느 쪽이요? 규빈이 스틱 끝으로 한 지점을 찍었다.
“여기. 킥 밟으면 같이 와요.”
말은 짧았고, 문제는 더 짧다. 지금 고치면 문제고, 공연 중에 터지면 참사니까. 규빈은 그 차이를 너무 잘 안다. 무릎 위에 놓인 스틱 두 개가 평행했다. 한편, 키보드 앞의 다정은 빠르게 맥북을 열어젖히던 중이다. 자. 이제 Blue light 라이브 패치가 뜨면 된다. 오늘의 첫 곡. 오늘 나와야 하는 첫 소리. 그러니까, 얼굴마담. 그런데 화면에 뜬 건, 왜 전 버전이지? 고개가 기울렸다. 너무 당당하게, 죄 없는 파일처럼 전 버전이 떠 있으니까. 음. 다정이 두 눈을 껌뻑댔다. 오늘 같은 날에 전 버전이라니, 이건 거의 기계가 사회생활 업신여기는 것 아닌지. 바삐 움직이던 손이 멎었다. 다정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잠깐만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단단했다. 재경이 마이크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왜?”
“전 버전이 잡혀.”
“많이 달라?”
“첫 곡이라 많이 달라요.”
스태프가 시간은 괜찮다며 달랬다. 다정의 눈이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옆에 있던 스태프가 시간은 괜찮다며 달랜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은 다정이 받아친다. 안 괜찮아요. 본인도 그게 너무 즉각적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사과할 시간이 없다. 그런 건 저장 후에나 하는 사치지. 막내는 그럴 동안 베이스를 한 번 더 보겠다며 뒤로 빠졌다. 선우는 제 쪽 문제가 아닌데도 애먼 케이블을 다시 꽂았다. 어처구니. 하기야, 멀쩡한 걸 만지는 일은 꽤 좋은 안정감을 불러다 주니까. 드럼 뒤에 있던 규빈이 고개를 살짝 뺐다. 한 번만 더 가면 돼?
“네. 아니, 십 초만요.”
다정의 손이 빨라진다. 폴더가 다시 열리고, 마침내 v5가 떠올랐다. 경직되어 있던 어깨가 풀어졌다.
“됐어요.”
“처음부터?”
“응, 처음부터.”
재경이 마이크를 잡고 하우스 쪽을 응시한다.
“보컬 조금만 더 주세요.”
“패드랑 겹쳐요. 보컬 올리면 패드 내려야 돼요.”
“그럼 패드 조금만.”
“얼마나.”
“반 칸?”
“반 칸이 어디 있어요.”
규빈이 하이햇을 한 번 쳤다. 다시 가면 알겠지. 선우가 페달을 밟았다. 지금 기타 앞이야? 소리가 너무 앞으로 나온 건 아니냐는 뜻이다. 그리고 엔지니어가 답하기도 전에 다정이 받아친다. 앞 아니고, 얇아. 선우의 입매가 비뚜름해진다. 그게 더 싫다, 이거다. 준희는 베이스 넥을 잡은 채 객석을 훑고 있다. 저는요? 그 말에는 규빈이 바로 답해 준다. 너는 커. 밴드 언어는 이렇다.
“소리가요?”
“응.”
“오, 다행.”
재경이 웃었다.
“좀 커도 돼. 잡아먹을 거 아니잖아.”
“어우, 그럼요.”
하나, 둘, 셋, 넷.
Blue light의 첫 신스가 빈 객석으로 번졌다. 사람이 없어서 더 적나라하다. 보컬은 한 칸 올라왔고, 패드는 한 칸 내려갔다. 기타는 여전히 살짝 얇은 상태. 선우가 첫 코러스 직전 페달을 밟자, 조금 나아진다. 만족한 얼굴은 아니다. 그렇다고, 꼭 싫은 얼굴만도 아니고. 프론트에서는 첫 줄을 부르던 재경이 소리를 줄였다.
“이 정도면 돼.”
하우스 엔지니어가 손을 들었다. 그러면, 다정은 노트에 짧게 표시를 남긴다. 규빈은 물을 마시고, 준희가 객석 앞줄을 훑고. 조금만 있으면 이 앞이 사람들로 꽉 차겠지. 마이크를 쥔 재경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뜬다. 믿기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구체적으로 선명해서 이상한 것처럼. 무대 한쪽에서는 콘텐츠팀 카메라가 돌고 있다. 다정이 패치 버전을 잘못 잡은 십 초는 찍혔을까. 찍혔을 거다.
사운드체크가 끝나고, 세 시간쯤이 비었다. 카메라도 꺼졌다.
규빈은 공연장 뒤편 복도의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핸드폰을 한 번 보고, 꺼내 놓은 스틱을 한 번 보고, 다시 핸드폰을 본다. 화면에 뭐가 떠 있는 건지, 읽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드러머 커뮤니티에 이름이 돈 걸 알고 있을까. 몰라도 상관없다는 얼굴. 알아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 복도 끝에서 스태프 두 명이 박스를 옮기며 지나갔다. 다리를 조금 접어서 길을 만들어 준다. 환기 소리와 형광등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돈다. 규빈의 다우니 향이 그 사이에 옅게 깔려 있다. 스틱 끝이 바닥을 한 번 쳤다. 탁. 박자를 세는 것도 아니고, 불안을 달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이 하는 일.
선우는 무대 위에 한 번 더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무대를. 페달보드 앞에 쭈그려 앉아서 케이블을 한 번 만지고, 페달 순서를 눈으로 한 번 훑고. 고칠 건 없었다. 아까도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부득불 올라온 건 몸에 밴 단위의 것 같았다. 예전에는 본인이 안 하면 아무도 안 했으니까 올라온 거. 지금은 스태프가 해 놨는데도 올라온 거. 손이 할 일을 내려놓는 법을 아직 모른다.
빈 객석이 조명 없이 앉아 있었다. 낮의 빈 객석은 밤의 빈 객석보다 더 비어 보인다. 무대 앞쪽까지 걸어갔다가 금세 돌아온다. 처음 보는 광경도 아닌데. 발바닥이 꼭 무대 바닥을 새로 읽는 것 같았다. 기타 없이 선 무대는 꽤 낯선 감각을 준다. 갈 곳 잃은 손이 주머니로 들어갔다가 나온다. 무대 뒤로 내려오는 계단 손잡이가 차갑게 느껴졌다. 손바닥에 남은 금속 냄새를 대충 바지에 문질렀다.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공연장 근처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다.
딸랑. 준희가 들어섰다. 카운터에 올려놓은 것은 삼각김밥 하나, 물 하나. 계산대 앞에서 스태프 패스가 목에 걸린 채로 서 있었는데, 뒤에 있던 사람이 한 번 쳐다봤다. 알아본 건지, 그냥 본 건지 모른다. 밖에 나오니 공연장 앞에 사람들이 서너 명씩 모여 있었다. 일찍 온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핸드폰을 보거나, 친구랑 이야기하거나, 포스터를 찍고 있다. 삼각김밥을 뜯던 준희가 그 사이를 유령처럼 지나갔다. 누군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대기실로 돌아가는 계단에서 비닐 뜯는 소리가 울렸다. 삼각김밥은 참치마요였다. 오늘 같은 날에 참치마요라니,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좀 웃겼다. 한 입 베어 물고 나서야 배가 고팠다는 걸 알았다. 베이스를 칠 때 힘이 빠지면 안 되니까. 그런 명목을 붙이면 먹는 일도 업무가 된다. 편하긴 했다. 업무라면 덜 긴장해도 되니까.
다정은 대기실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맥북 위를 두들겼다.
열면 또 볼 거다. 패치를 또 볼 거고, 안 봐도 되는 것도 볼 거다. 보름 동안 안 봐도 되는 것들을 꽤 많이 봤다. 고칠 건 없는데. 테이블 위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물이 차가웠다. 위장이 한 번 울렁거렸는데, 긴장인지 물이 차서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 구분을 포기하고 한 모금 더 마셨다. 맥북 위에 놓인 손가락이 미세하게 트랙패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무의식이었다. 패치 전환 순서를 손이 외우고 있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손이 외운 일을 머리가 못 믿는 날이 있다. 대개 첫날이 그렇다.
재경은 세면대 앞에 서서 손을 적셨다.
차가운 물이 손목까지 올라왔다. 백금발이 형광등 아래에서 살짝 노랗게 떴다. 무대 조명 아래에서 보이는 색과 다른 색. 물을 잠그고 손을 털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 복도에서 객석 쪽 소음이 밀려들었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발 끄는 소리, 웅웅거리는 말소리. 벽 하나를 두고 새어 나오는 소리들. 잠깐 멈춘다. 그게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곧 자기 이름을 부를 사람들의 소리였다.
복도 바닥에 제 발소리가 찍혔다. 재경은 손목에 남은 물기를 티셔츠 옆선에 대충 눌러 닦았다. 휴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젖은 자리 하나가 작게 남았다가 금세 사라졌다. 문 너머의 웅성거림은 조금씩 불어났다. 객석이 차고 있다는 건, 이제부터 어떤 말도 빈 방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오후 네 시가 가까워졌다.
대기실에 콘텐츠팀 카메라가 다시 들어와 있었다. 오후 네 시가 가까워지자 말소리가 조금 더 불어났다. 메이크업은 끝났고, 의상은 거의 정리된 상태. 재경이 흰 티 아래로 마이크팩 선을 빼다가 도로 넣었다. 이거 보여요? 어, 네, 보여요.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맥북에 고개를 박고 있던 다정이 눈길만 슬쩍. 그러면 재경이 또 허공에 툭 놓는다. 많이? 음. 예쁘게 보이는 건 아니고요. 그럼 안 되지. 허공에서 주거니 받거니, 서로 봐 주는 게 꽤나 익숙한 본새다. 일적인 부분에서는 착착 맞아 돌아갔다. 근처에서 옷 매무새를 가다듬던 선우가 양쪽 눈썹을 들었다가 놓는다. 중요하지, 마이크.
“사람 많이 왔을까요.”
“공석은 없다던데.”
“오케이.”
옆에서 짐을 정리하던 규빈의 시선이 스쳤다. 두런두런 오가는 대화 속에서 각자가 바쁘게 돌아간다. 재경은 선 정리를 거의 끝마쳐 가는 듯했다. 저 선 하나가 조명을 받으면, 방금까지 쌓은 이미지가 단숨에 장비 착용샷으로 내려앉으니까. 별것 아닌데 참 별것인 것투성이다. 준희는 거울 앞에서 셔츠 소매를 내렸다가 다시 걷었다. 제법 얌전히 굴겠다는 얼굴. 평소 같으면 이미 툭툭 장난치고 다녔을 애인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저 오늘 말 많이 안 할게요, 하고 덧붙인다. 튜너를 응시하던 선우가 툭 불거졌다. 그 말부터가 이미 많은 것 아니야?
“아니, 지금부터요.”
트랙 패드를 쓸던 다정이 슬쩍 참견했다.
“무대 올라가면 마이크 없어서 괜찮아.”
“아, 위로 아닌 것 같은데.”
진짜, 오늘은 좀 조심하려고요. 시선이 잠시 제자리에서 깜빡거렸다. 첫 글래시니까요. 제가 아무 말이나 하면, 그게 우리 첫날 말이 되는 거잖아요.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이 말이 나중에 영상에 나올지도 모른다. 준희는 카메라를 안 보고 있었다. 선우가 튜너를 내려놓았다.
“너 방금 되게 평범한 말 했다.”
“저 원래 평범해요.”
응? 멤버들의 시선이 살짝씩 틀어진다. 반사적인 행동이다. 평범……. 두 눈을 홉뜬 재경이 가만 그 말을 곱씹었다. 그때, 탁, 맥북 닫히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평범하게 가자.”
원래 평범한 게 제일 어려운 법이지만. 그 말에, 다섯 이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짐을 챙겨 든다. 이상한 일이다. 누가 큐를 준 것도 아닌데, 어떤 음성 뒤에는 곧바로 움직이게 되니까. 제일 먼저 규빈이 일어섰다. 재경은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벽면의 시계를 한 번 훔친다. 선우는 기타 스트랩을 어깨에 걸고, 준희는 손바닥을 털고. 마지막으로, 다정이 백업 드라이브를 가방에 넣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문이 열리고, 스태프가 들어온다. 오 분 뒤 올라갑니다. 네.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빙글, 빙글. 던롭 피크가 선우 손 안에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스트랩이 어깨에 걸리고, 가방 지퍼가 닫히고, 생수 뚜껑이 열렸다가 닫혔다.
오 분이 제일 애매했다. 뭘 하기에도, 안 하기에도 좀.
“나는 이때가 제일 애매하더라.”
“뭘 하기에도, 안 하기에도 좀.”
각자 핸드폰을 꺼냈다. 재경이 서서 화면을 슥 보고 내렸다. 엄지로 메시지를 하나 넘겼다. 화면 끄트머리에 ‘……딸 응원해. 사람들 말 너무 신경 쓰지 말’ 하는 내용이 잠시 스쳤다. 곧장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선우는 알림 하나를 열었다. 축하한다는 메시지. 누구에게 온 건지는 보이지 않았다. 뭔가 치려다 말고 화면을 껐다. 준희는 아이메시지를 열고 영어로 타이핑하고 있었다. brb going on now lol. 보내고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다정이 핸드폰을 꺼냈다. 네이버를 열었다. 검색창에 글래, 까지 쳤다. 몇 초간 커서가 깜빡거렸다. 검색창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 검색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시간이 있다. 확실히 안 하는 편이 나은 쪽이었다. 규빈은 핸드폰을 안 꺼냈다.
“그래서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죠.”
다정이 고개를 쳤다. 즉각이다.
“하지 마.”
“아, 안 해요, 안 해요. 진짜.”
규빈이 살짝 웃고 만다. 가자. 여유롭게 있는 게 나아. 악기를 고쳐 멘 멤버들이 하나둘 걸음을 뗀다. 무대 뒤는 꽤 어두웠다. 얇은 벽 너머로 객석 소리가 밀려들었다. 이름 모를 말소리와 웃음, 카메라 앱 켜지는 소리, 의자 끌리는 소리나 부스럭대는 생활 소음들. 그 모든 것이 아직 글래시의 소리는 아니라고 느껴졌다. 곧 글래시라는 이름으로 붙을 소리들이기는 해도. 툭툭. 하우스 스피커에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글래시의 첫 라이브 쇼케이스가 시작됩니다. 글래시. 낯익은 듯 생경한 이름 하나가 공연장 안을 돌아다녔다.
재경의 시선이 차츰 멀어진다. 주변을 가득 메운 소음들이 아주 잠깐 멀어지는 듯한 감각이 있었다. 여기까지 왔구나. 고개가 들린다. 백스테이지 전경을 느리게 둘러본다. 방 안에서 혼자 쓰고, 커버에 얹고, 입으로 설명하던 제 모습이 어른거렸다. 웃으며 넘기던 글자가, 갑자기 공연장 천장까지 올라가 객석으로 퍼진다. glassh, hour. 그리고 our. 내 것인 동시에, 더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이름. 좋은지, 어색한지, 아직 판정이 안 됐다. 몸이 먼저 듣는다. 옆에 있던 준희가 작게 물었다. 이름 크게 들으니까 이상해요?
“응.”
“Good weird?”
“Not sure yet.”
그 뒤로 더는 묻지 않는다. 오늘의 막내는 제법 훌륭했다.
규빈이 먼저 올라갔다. 드럼 뒤로 사라지는 뒷모습. 다정이 키보드 앞에 선다. 선우가 페달 보드를 확인하고, 자세를 잡고. 한쪽에서 베이스를 몸에 맞추는 소리가 작게 스몄다. 그 중심에 재경이 섰다. 사방을 때려 대던 군중의 소음이 차츰차츰 멀어져 간다. 이윽고, 거짓말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스틱이 올라간다.
다정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키보드 앞에 섰을 때, 자기가 서 있다는 사실이 한 박자 늦게 왔다. 그 찰나에 본 건 손이다. 키보드 위에 올라가 있는 자기 손. 손톱이 짧게 다듬어져 있다. 그 손이 패치를 한 번 누르면 첫 곡이 시작된다.
객석 조명이 내려간다. 핸드폰 화면들이 떠오른다. 고성 없이 화면을 드는 손들. 이백 석이 다 찼다. 들으러 온 사람과 확인하러 온 사람이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뒤쪽 바 테이블에서 잔 내려놓는 소리가 탁, 한 번 들렸다가 잠긴다. 앰프에서 웅, 하는 대기음이 무대 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장비가 데워진 냄새, 케이블 피복이 살짝 익은 냄새가 무대 위에 얇게 깔려 있다. 규빈의 스틱이 올라간다. 늘 같은 높이.
하나, 둘, 셋, 넷.
Blue light가 시작됐다.
연습과 실전 사이에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틈이 있다나. 재경의 목소리가 첫 줄에서 앞으로 나왔다. 하우스 스피커를 통과한 보컬이 객석의 가슴팍에 직접 부딪힌다. 그 진동이 의자 등받이를 타고 등으로 돌아왔다. 다정의 손이 움직인다. 패드가 한 칸 내려간다. 십 년 작업한 손. 처음으로 믿어진다. 선우는 첫 기타 포인트에서 객석을 보지 않았다. 하우스에서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 거다. 살짝 긁힌 어택, 클린하게 안 끝나는 서스테인이 객석 끝까지 밀려 나갔다. 스튜디오에서는 정리했던 톤이다. 라이브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소리가 그대로 나갔다. 플라스틱이 아니라는 걸 기타가 먼저 증명했다. 규빈의 드럼이 낮게 깔린다. 무대 위에서 들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진동. 심벌이 길게 퍼지면서 보컬 위로 지나갔다. 베이스는 첫 코러스에서 아주 조금 위로 떴다. 앞줄의 두세 명이 몸을 들썩인다. 괜히 봤다가 웃으면 곤란하니 시선을 달리 쓴다.
코러스에 접어들자 재경이 웃었다. 규빈의 카운트가 평소보다 반 박자 여유 있게 들어왔고, 다정이 살린 패치가 죽지 않았고, 선우의 기타가 더는 얇지 않았고, 준희의 베이스가 컸다. 이 정도면 된다. 대단한 확신 같은 건 아니고, 첫 곡을 지나갈 수 있다는 낮은 허가. 무대 위에서 그 정도면 꽤 크다.
객석에서 Blue light는 생각보다 순했다.
순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첫 보컬이 위로 치솟아 자기 실력을 전시하는 대신, 조금 낮은 온도로 사람을 앉히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빨리 들어왔다. 앞줄의 누군가는 후렴 첫 줄에서 핸드폰을 내리고, 옆 사람에게 뭐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인디 음악을 자주 듣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순간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마음에 든다고 바로 말하면 진 것 같고, 별로라고 하기에는 이미 몸이 박자를 알고 있으니까. 밝은 곳을 바라보는 곡인데, 웃으며 뛰어가는 밝음은 아니었다. 고립된 청춘 같은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밝음. 푸른 하늘을 보고 있는데 발밑은 여전히 지하철 계단인 그런 밝음.
첫 곡이 끝났다.
박수가 제각각으로 왔다. 어디서 쳐야 하는지 아직 모르는 손들이 겹치면서 하나가 된다. 고성이 없는 박수. 어쩌면 이 객석의 성질이었을지도 모른다. 재경이 숨을 고르는 사이, 규빈이 다음 곡을 보고, 다정이 패치를 전환하고, 선우가 튜닝하는 체를 하고, 준희가 객석을 훑는다. 재경이 다시 마이크를 쥐었다.
“안녕하세요. 글래시입니다.”
박수가 쏟아진다.
“저희도 오늘 처음 들어 봐요, 이렇게는.”
객석에서 웃음 소리가 떠올랐다. 재경이 그 웃음을 받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끝까지 크게 들어 볼게요.”
그게 다였다. 재경이 말을 줄인다. 다음으로는, Pale Blue Dive. 다정이 짧게 심호흡한다. 패치를 바꾸는 손가락 끝이 차갑다. 무대 위가 추운 게 아니다. 손끝만 차다.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패치를 바꾸는 그 찰나의 정지 안에서, 차가움이 손톱 밑부터 올라온다. 언제부터였을까. 신스 레이어 하나가 줄었다. 보컬이 떠 있어야 하는 곡이다. 패드를 깔면 따뜻해진다. 따뜻해지면 안 된다.

두 번째 곡인 Pale blue dive에 들어가자 자세가 바뀌었다.
핸드 마이크가 마이크 스탠드로 옮겨간다. 두 손이 스탠드를 감싸 쥔다. 코러스에서 목이 한 번 긁혔다. 이 곡에서만 쓰는 창법. 다정이 화면에서 눈을 뗐다. 보면 신경 쓰인다. 선우의 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첫 곡에서는 페달보드 쪽으로 닫혀 있었는데, 두 번째 곡부터 기타 넥이 관객 쪽으로 나갔다. 올드 캔디 애플 레드가 조명에 잡힐 때마다 빛바랜 빨강이 깊어진다. 기타가 뻗대는 마디에서 왼쪽 어깨가 내려가고, 피킹하는 오른손이 조명 안으로 들어온다. 객석에서 입이 움직이다 닫히는 사람이 보였다. 따라 불러도 되는 건가. 아직은 모른다.
준희의 베이스가 첫 곡보다 제 위치에 가까워져 있다. 코러스에서 발끝이 먼저 움직이고, 어깨가 뒤따라간다. 드럼은 밀어붙이지 않았다. 규빈은 필요한 순간에만 열어 주고, 다시 닫았다. 그 덕에 곡이 위로 뜨지 않고, 아래 어딘가를 딛고 있었다. 재경은 마지막 훅에서 한 음을 길게 가져가다 아주 짧게 숨을 삼켰다. 음원에는 없던 흠. 현장에는 그런 것들이 남는다. 너무 깨끗해서 의심받던 팀이, 오히려 그 작은 흠 때문에 조금 더 실제가 되는 밤.
이 곡에서 객석은 박수보다 표정을 먼저 잃었다. 사랑 노래인가. 아닌가. 누군가를 향해 있는 건 맞는데, 막상 닿겠다는 몸짓은 없었다. 시야 안에 계속 남는 사람, 그런데 손을 뻗지는 않는 사람. 가사가 그렇게 들렸다. 궤도라는 말이 떠오를 만한 거리감. 직접 닿지 않고, 빛을 받아 다시 내보내는 사람의 쓸쓸함. 그래서 따라 부르려던 입이 한 번 닫힌다. 부르기 전에 먼저 해석해야 할 것 같은 곡은 대개 객석을 아주 잠깐 늦춘다. 오늘의 Pale Blue Dive가 그랬다.
이어서, Mercury.
무대 공기가 한 칸 가까워졌다. 가까워졌다는 건 사람의 냄새가 더 가까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객석에서 올라오는 체온, 향수가 섞인 습기, 조명에 데워진 먼지 같은 것이 무대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Knew it pulls
Came closer
말하듯 부르는 곡이다. 선우의 아르페지오가 띵, 띵, 한 음씩 놓아주듯 나간다. 뒤쪽 바 테이블에서 움직이던 사람이 멈추었다. 규빈이 드럼을 거의 거두었다. 들리지 않을 만큼만 남긴다. 곡을 놓지 않으면서. 다정의 패드가 보컬 뒤로 아주 낮게 깔린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곡이라 신스가 공기가 되어야 한다. 준희의 베이스가 웅, 하고 바닥을 잡는다. 위가 비니까 아래가 버틴다.
이 곡에서는 객석이 빨리 가까워졌다. 빠르게 뜨거워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손뼉이 줄고, 말소리가 줄고, 몸을 앞쪽으로 살짝 당기는 사람이 늘었다. Mercury의 훅은 사람을 크게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그냥 조금 당긴다. 고개 하나, 어깨 하나, 입술 안쪽으로 굴러가는 발음 하나만큼. M.E.R.-cury. 그 잘린 철자들이 객석 곳곳에서 무음으로 따라 움직였다.
휴대폰 스피커에서 이 곡은 훅으로 먼저 남았을 것이다. 엠이알큐리. 장난치기 좋은 조각. 그런데 공연장에서는 그 장난이 조금 늦게 왔다. 음절 사이에 숨이 있고, 차갑게 굴러가는 단어 끝에 낮은 베이스가 붙어 있었다. 수은이 차갑고 위험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마지막에 조금 따뜻해지는 느낌이 오히려 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안정이 아니라 손에 쥐면 안 되는 것이 손바닥 온도를 얻는 듯한 불안. 객석은 그걸 멋있다고 바로 부르지 못하고, 고개만 조금 앞으로 당겼다. 그 정도가 이 곡에는 더 맞았다.
곡이 끝나자 재경이 인이어를 한 번 만졌다. 규빈의 시선이 스쳤다. 보였을까. 보였을 거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멤버 이름이 흩어져 나온다. 응원법 같은 게 있을 리 없는데. 이름들이 각자 다른 높이로 튀어 올랐다가 천장 가까이에서 금세 흩어졌다. 무대 위로 올라온 건 환호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이제 이름까지 맞춰 부를 수 있다는 확인.
“오늘 되게 많이 보고 계시네요.”
“저희도 보고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Bleed가 시작됐다. 재경이 마이크를 살짝 떨어뜨린다. 목울대를 한 번 쳤다.
Glass in my throat
삼킨 채로 웃어
객석이 조용해졌다. 기다림이 아니다. 멈춤이다.
조용해진 객석에는 냄새가 있다. 사람이 숨을 참을 때 공기가 멎으면서 그 자리에 남는 향수와 땀과 콘크리트가 섞인 냄새. 선우가 조명 안쪽에 한 발 들였다. 시선은 주지 않았다. 기타의 첫 음이 나간 순간, 앞줄에 떠 있던 핸드폰 몇 개가 내려갔다. 확인하러 온 사람의 손도 내려갔을까. 알 수 없다. 다만 화면으로 보려던 사람들이 눈으로 보기 시작한 순간은 있었다. 중간 열에서 누가 옆 사람의 팔을 잡는 동작이 조명 끝에 걸렸다. 다음 마디의 피킹이 거칠어진다. 클린하게 안 끝나는 서스테인. 이 곡에서는 새는 소리가 된다. 다정이 곁눈질했다. 비어 있는 자리가 있어야 기타가 샌다. 신스가 벽이 아니라 공기로 낮아진다. 규빈의 킥이 쿵, 쿵, 곡의 바닥을 잡고, 그 위에서 스네어가 딱, 정확하게 들어간다. 흔들리지 않는다. 준희의 베이스가 필요한 자리에서만 바닥을 닫는다.
Bleed는 음원에서 이미 문장으로 세게 들렸던 곡이다. 그런데 라이브에서는 문장보다 목이 먼저 왔다. 재경이 단어를 밀어내는 방식, 삼킨 뒤에 웃는 얼굴, 완전히 열리지 않는 모음. 좋다는 말을 붙이기 전에 얼굴 근육부터 굳는 종류의 노래. 객석 어딘가에서 따라 부르려던 입이 닫혔다가 다시 열린다. 반 박 늦게 섞여 들어온 목소리들이 있었다. 따라 부르되 침범하지 않는 자리에서. 들리고 있었을까. 무대 위까지.
깨끗해서 더 위험한 노래가 있다.
지저분하게 무너지는 곡이면 사람은 차라리 편하게 본다. 그런데 Bleed는 상처를 아주 하얀 조명 아래 놓았다. 피와 유리와 밤이 한곳에 있는데, 소리는 지저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서늘했다. 말해야 하는데 말이 상처가 되는 상태. 뱉어야 사는데 뱉는 순간 목이 베이는 상태. 재경이 짧게 끊는 자음마다 객석의 목이 같이 굳었다. 스타카토처럼 잘린 몇 음에서는 정말로 숨이 얕아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이 곡의 설득이었다.
박수가 늦게 왔다. 곡이 끝나고도 한 박 더 조용했다가, 터졌다. 그 짧은 지연이 제일 정확한 반응이었다. 누가 먼저 손뼉을 쳐도 되는지, 방금 들은 걸 박수로 처리해도 되는지, 객석이 잠깐 허둥댔다. 그러고 나서야 소리가 밀려왔다.
쉬지 않고, 물 흐르듯 Parallel.
공기가 바뀌었다. 조명이 밝아지고, 규빈이 느려졌다. 걷는 속도의 곡이니까. 재경이 마이크 스탠드에서 손을 떼고 한 발 나왔다. 백금발이 밝은 조명에 잡힌다. 무대 위 공기가 환해지면서 땀 냄새가 잠깐 올라왔다가 조명 열기에 섞여 사라졌다. 앞선 곡에서 몸을 굳히고 있던 객석이 아주 조금씩 등받이에 기대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렸다는 뜻은 아니고, 긴장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다정의 패드가 넓어지며 공간감을 줬다. 벽이 아니라 바닥처럼 낮게. 선우의 기타가 틴, 틴, 한 음씩 끊어진다. 놓아주는 톤이다. 객석에서 눈을 감는 사람이 보인다. 준희가 처음으로 객석을 정면으로 봤다. 앞줄 몇 명이 작게 따라 부르고 있다. 입 모양만. 혼자 이어폰으로 들을 때 움직이던 입들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다. 준희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가 닫힌다. 뭔가 알아챈 얼굴이었을까. 아닐 수도 있다.
Parallel은 처음 들었을 때 심심하다는 말을 들은 곡이었다. 어쩌면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이 곡은 먼저 뛰지 않는다. 청자를 향해 손을 잡아끄는 대신, 반 발짝 옆에서 걷는다. 그래서 라이브에서는 조금 달랐다. 무대 위의 다섯 명이 서로의 소리를 밀지 않고 비켜 주는 방식이 보였다. 규빈이 덜 치고, 선우가 덜 붙이고, 다정이 넓게 깔고, 준희가 아래를 잡고, 재경이 끝까지 과하게 열지 않는 것. 덜어낸 자리에 사람이 들어갈 틈이 생겼다.
누군가는 이 곡에서 애니메이션 영화의 중반부를 떠올렸을 것이다. 대단한 장면 말고, 주인공이 아직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모래 위를 걷는 장면. 발을 디디면 자국은 남지만 곧 흐려지고, 그래도 다음 발을 뗄 수밖에 없는 장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초록 같은 줄은 현장에서 조금 덜 추상적으로 들렸다. 파라다이스라기보다, 아직 멀어서 더 선명한 색. 그래서 이 곡은 라이브에서 느리게 이겼다. 환호보다 무릎 위 손가락으로 먼저.
마지막 코러스에서는 박수가 아니라 발끝이 먼저 움직였다.
객석 앞줄에서 누군가 무릎 위 손가락으로 박자를 찍었다. 딱, 딱, 딱. 소리는 무대까지 닿지 않았지만, 동작은 보였다. 재경이 그쪽을 본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음 줄을 부를 때, 첫 음이 조금 더 늦게 들어왔다. 의도라기엔 너무 작고, 실수라기엔 너무 자연스러운 늦음. 이런 것들은 대개 영상으로는 잘 안 남는다. 보고 온 사람들만 집에 가서 계속 생각한다.
마지막 곡이다.
조명이 더욱 낮아졌다. Midnight Space. 다정의 신스가 얇은 막처럼 깔린다. 재경의 첫 발화가 속삭임에 가깝다.
not day, not night
규빈의 드럼이 아주 낮게 들어온다. 공기 안에 녹아 있는 박이다. 선우의 기타가 높은 자리에서 핑, 짧게 빛났다가 사라진다. 다정이 그 소리를 글래시 핑이라고 부르는 걸 다른 멤버들은 모른다. 준희의 베이스가 낮은 자리에서 곡을 잡고 있다. 마지막 코러스에서 보컬이 가장 넓게 나간다. 터지는 게 아니라 넓어지는 보컬이다. 객석에 핸드폰 화면들이 아직 떠 있다. 첫 곡에서는 찍으려는 화면이었는데, 마지막 곡에서는 찍는 걸 잊은 화면이다. 공연장 전체에 다정의 신스와 규빈의 심벌이 섞인 잔향이 가라앉듯 깔렸다. 그 위로 보컬만 떠 있었다. 엔딩 패드가 반 박 길어진다. 선우의 기타가 마지막 음 전에 손을 늦춘다. 규빈의 심벌이 서서히 낮아진다. 마지막 화음은 돌아갈 곳을 끝내 미뤄 둔 채 머문다.
Midnight Space는 현실감이 제일 늦게 왔다. 우주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지만, 공연장에서는 아주 멀리 가는 노래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과제 끝내고 새벽에 돌아오는 길, 편의점 불빛과 신호등과 아무도 없는 정류장 사이에 붙는 고독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풍경 하나를 조용히 보여 주는 곡.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데, 더는 밀어내지 않는 쪽. 그래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객석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반응일 때가 있다.
그렇게 끝이 났다.
박수 소리가 쏟아진다. 바로 쏟아졌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조금 늦었다. 무대가 끝났다는 걸 먼저 알아차린 건 조명이고, 그다음이 멤버들이고, 객석은 마지막으로 따라왔다. 그 짧은 순서 차이. 다들 손을 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을 끝으로 잡아야 할지 잠깐 놓친 얼굴들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박수가 밀려왔다. 큰 박수였지만, 한 박 늦은 큰 박수였다.
재경이 마이크를 쥔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명이 위에서, 앞에서 떨어진다. 균일하지 않다. 눈꺼풀 아래로 빛이 어룽댔다. 동공이 느리게 잠겼다가 떠올랐다. 속눈썹 아래로 그늘이 졌다. 호흡이 느렸다. 무거운 것도 같았다. 무대 위의 시간이 잠깐 늘어졌다.
“어…….”
마이크를 쥔 손이 올라왔다. 운을 떼고도 한참이나 말이 없다. 객석은 말없이 그를 기다렸다.
“제가 많이 긴장했나 봐요. 아무래도 처음이라.”
아주 얕은 웃음이 살짝 떠올랐다. 객석에서도 희미하게. 재경이 가만 눈을 씀벅이며 생각하는 듯했다. 뭔가를 고르고 있었다. 말을. 보름 동안 줄여 온 말 중에서 오늘 꺼내도 되는 것을.
“역시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시선이 살짝 낮아졌다가, 객석 어디쯤을 봤다. 어느 한 사람을 오래 보지 않았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경험을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꾸벅. 글래시 원재경이었습니다.
대기실 문이 닫히자마자 가장 먼저 들린 건 박수 얘기가 아니었다.
“인이어 한 번 빠질 뻔했어요.”
재경이 허리 뒤에서 마이크팩을 뺐다.
“어느 곡?”
“머큐리 끝나고.”
“아아. 봤어.”
“아, 보셨구나…….”
재경이 웃었다. 다정이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맥북을 연다.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얘는 방금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맥북부터 여는 사람이다. 정확히, 평소와 같다. 그러니까, 같으려고 하고 있었다. 다들 그랬다. 2번 트랙 패치 안 죽은 거 진짜 다행이에요. 생수를 털어 넣던 선우가 입가를 훔친다. 공연 끝나고 첫마디가 그거야? 그럼 뭐라고 해. 그 무렵, 대기실 문 앞에서 돌던 콘텐츠팀 카메라가 꺼졌다. 인터뷰는 나중에 따로 찍겠다나. 그러고 문이 닫혔다. 준희가 베이스를 세워 두고도 내내 서 있다.
대기실 공기가 공연 전과 달랐다. 특별히 들뜬 건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조용했다. 땀 냄새와 헤어스프레이 냄새, 막 벗은 인이어 실리콘 냄새, 케이스 안쪽 천 냄새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있었다. 선우는 기타를 세워 두고도 스트랩 끝을 계속 만졌고, 준희는 베이스를 케이스에 넣기 전에 괜히 넥을 한 번 닦았다. 규빈은 스틱을 보지도 않고 케이스에 밀어 넣었다. 정확히 들어갔다. 참 사람 열 받게 정확한 손이다.
카메라가 빠져나간 뒤에야 방 안의 소리가 조금 제 주인을 찾았다. 물 넘기는 소리, 수건 터는 소리, 케이스 잠금쇠 닫는 소리. 환호보다 그런 것들이 먼저 돌아왔다.
“우리 잘했죠?”
잠시 마가 떴다. 그러자, 스틱 케이스 지퍼를 닫은 규빈이 대꾸했다.
“잘했어.”
“와.”
“왜?”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진짜 같아요.”
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아까까지 가짜로 쳤어?”
“설마요.”
재경이 생수를 집었다. 한 모금 마시고, 뚜껑을 닫고, 다시 열고, 한 모금 더 마셨다. 아무도 안 봤다. 다정이 저장 버튼을 눌렀다. 말싸움 전에 녹음본부터 받아. 선우가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머리카락을 넘겼다.
“감동도 백업하네.”
“안 하면 날아간다.”
“맞기는 해.”
잠깐 조용해졌다. 아무도 마무리를 안 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뭘 해야 맞는지 모르는 조용함이었다. 넷이 각자의 자리에서 뭔가를 만지거나 안 만지거나 하고 있을 때, 준희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수구하셨습니다.”
“수고.”
“아, 수고하셨습니다.”
“보통 밑엣 사람한테 하는 말인데.”
“아! 이거 너무 헷갈려요.”
준희가 두 눈을 홉떴다. 그러면 뭐라고 해요? 다정이 잠깐 생각했다.
“고생?”
“맞아. 고생했어요.”
준희가 넷을 한 번씩 봤다. 진짜 고생했어요. 선우가 코웃음을 쳤다. 쉽게 나오는 말이 나쁘지 않았다.
스태프가 문 밖에서 단체 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정이 노트북을 닫는다. 선우가 거울을 훑었다. 준희는 어깨에 남은 베이스 스트랩 자국을 확인하고 있었다.
“저 괜찮아요?”
“응.”
“방금 봤어요?”
“봤어.”
다정이 문 쪽으로 먼저 붙었다. 선우가 뒤따랐다.
“첫 공 사진은 원래 이런 거지.”
“너 데뷔해 봤어?”
“겠냐고. 데뷔는 처음이야.”
다정이 문을 연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로비 조명이 밝았다. 다섯 명이 포토월 앞에 섰다. 재경이 중심에 서고, 규빈이 한쪽 뒤에 서고, 다정은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들어왔다. 선우는 기타 없이 찍으니 손 둘 곳을 잠깐 못 찾았다. 준희가 그걸 보고 자기 손도 괜히 내려다봤다. 사진사가 조금만 붙어 달라고 했다. 다섯 명이 조금 가까워졌다. 너무 가깝지는 않았다. 사진에 들어올 만큼.
플래시가 터졌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거창한 고백도 없었다. 패치가 살아 있었고, 기타가 얇지 않았고, 베이스가 크게 들렸다. 드럼 라이저는 흔들리지 않았고, 보컬은 자기 이름을 공연장 안에서 크게 들었다. 딱 그거면 됐다.
공연장 밖으로 나가는 복도에서 바깥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규빈이 기타 케이스 두 개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본인 거 아니라 선우 거. 선우가 가방이랑 페달보드 케이스를 양손에 들고 있어서 규빈이 하나 받은 거다. 따로 말은 없었다. 준희가 베이스 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다정이 노트북 가방을 들고, 재경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스태프가 장비 정리를 마무리하는 동안 다섯 명이 앞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문이 열리자, 밤 공기가 끼쳤다. 공연장 안의 데워진 공기와는 다른, 차갑고 날것의 공기. 동시에, 소리가 들렸다. 어,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공연장 앞에 사람들이 있었다. 뭉쳐 있지 않았다. 흩어져 있었다. 앞문 근처에 열 명 남짓이 서 있었고, 그 뒤로 건물 모서리나 가로등 근처에 더 있었다. 핸드폰을 보는 척하거나, 친구와 이야기하는 척하거나, 그냥 서 있는 사람들. 나오나 봐. 나왔어.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건 아닌데 발이 안 떨어져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돌아가려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사람들. 멀리서 보는 것도 보는 거니까.
가까이 선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공연장 안에서는 조명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얼굴들이 가로등 아래에서 다 보였다. 방금 본 걸 아직 처리하는 중인 얼굴들이었다. 웃는 건지 멍한 건지 구분이 안 되는 표정. 한 명이 눈을 닦았다. 나머지는 그냥 서 있었다.
첫 공이니까 굿즈가 없었다. 대신 직접 가져온 것들이 보였다. A4 종이에 매직으로 쓴 플랜카드를 접어서 들고 있는 사람, 편의점 꽃다발을 비닐째 안고 있는 사람, 편지 봉투를 손에 쥐고 뭘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어떤 사람은 블루라이트 가사를 적은 스티커를 핸드폰 뒤에 붙이고 있었다. 손글씨였다.
재경이 멈추었다. 마스크 위로 눈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웃음이 올라왔는데 마스크 안이라 눈만 접혔다. 무대 위 웃음과는 다른 웃음이었을 거다. 선우는 얼굴이 굳었다. 기타 케이스를 규빈한테 맡기고 나온 손이 갈 곳이 없어서 주머니에 들어갔다. 규빈은 케이스 두 개를 든 채로 한 발 뒤에 서 있었다. 표정 변화는 없었다. 다정은 노트북 가방 끈을 어깨에 고쳐 멨다. 다시 고쳐 멨다. 준희가 먼저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골목이 잠깐 조용해졌다가 터졌다. 글래시, 재경아, 선우야. 이름이 뒤섞여 왔다. 멀리 서 있던 사람 중 몇 명이 반 걸음쯤 가까이 왔다. 반 걸음만.
재경이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짧게 인사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우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규빈이 케이스를 내려놓고 고개를 까닥했다. 다정이 짧게 손을 들었다. 준희가 또 흔들었다. 편의점 꽃다발을 들고 있던 사람이 한 발 다가왔다가 멈추었다. 재경이 알아채고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 옆에서 편지 봉투를 내미는 손이 있었다. 준희한테. 준희가 두 손으로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다. 누군가 재경의 이름을 불렀다. 재경이 고개를 돌렸다.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종이 위에 써 있는 건 짧았다. 처음부터 들었어요. 재경이 그걸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섯 명이 흩어졌다. 규빈이 주차장 쪽으로 케이스를 끌고 갔다. 선우가 뒤따랐다. 나머지 셋이 도로 쪽으로 걸어 나왔다. 재경이 마스크를 다시 올렸다. 다정이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를 확인했다. 준희가 케이스를 어깨에 다시 맨다. 셋이 도로 앞에 섰다. 잠깐 아무도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 다정이 지하철 시간을 보는 건지 다른 걸 보는 건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재경이 도로 양쪽을 한 번씩 봤다. 보통은 이쯤에서 수고했어, 하고 흩어진다. 원래 그랬다. 합주 끝나면 각자 집이었다. 재경은 원래가 없었다. 공연 끝나고 뭘 하는 게 보통인지 모른다. 각자 가는 건가. 같이 뭘 하는 건가. 다정도 움직이지 않았다. 준희도 안 움직였다. 세 명이 서 있는 시간이 3초쯤 됐을까. 5초쯤 됐을까.
“배고파요.”
오늘 같은 날은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 하는 건지, 그냥 그러고 싶은 건지. 둘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앉을 수 있는 데 없나.”
“꽤나 현실적.”
“첫공 끝났잖아요.”
다정이 핸드폰을 보며 걷는다. 여기 근처 뭐 있어? 어, 잠시만요. 찾아 볼게요. 횡단보도 앞에서 셋이 멈추었다. 신호가 빨간불이었다. 공연장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케이스를 든 셋을 한 번씩 쳐다봤다. 밴드인가. 아닌가. 모르겠다. 재경이 마스크 위를 한 번 눌렀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작게 났다. 준희가 봤다. 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추워서. 신호가 바뀌었다. 셋이 발을 뻗는다. 재경이 잠시 등 뒤를 돌아본다. 공연장 앞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산재해 있다. 가까이 닿았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못 박혀 있다. 돌아가려다가 멈춘 자세 그대로. 그들의 어둑한 얼굴로 핸드폰 불빛이 떠올랐다. 오늘 있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때, 횡단보도 불빛이 바뀌었다.
그 길을 횡단하는 셋의 등 뒤로, 공연장 간판의 글자가 빛났다. 글래시. 첫 공연이 끝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