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low
005. D-4
D-4
Mercury 공개 직전, 공식 계정의 짧은 단서와 제목 말장난이 다시 사람들을 새로고침 앞으로 모은다.
D-4 오후 다섯 시 오십칠 분,
공식 인스타는 오늘도 설명을 아꼈다.
여섯 시 직전 올라온 게시물에는 은색에 가까운 회색 배경, 흐릿한 손끝, 기타 헤드 일부, 유리컵 모서리, 그리고 03. Mercury / 18:00 KST만 있었다. 팬 계정이 아직 생겼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계정들이 댓글창에서 먼저 싸웠다. 수성 맞죠? 밑에 수은 아님?이 붙고, 그 아래에 둘 다 Mercury라 회사가 이겼네 같은 말이 달렸다. 실제 음악이 나오기 전부터 해석이 아니라 검색어가 갈라졌다. 이 팀 홍보는 거창한 설명보다 맞춤법 오류를 더 잘 쓴다. 사람들은 자기가 놀림당하는 줄 알면서도 새로고침을 눌렀다. 머큐리, 메큐리, 머구리, mercuri, mercury glassh, 글래시 수은, 괄호밴드 수성, 그 엠이알 같은 검색어가 먼저 굴렀다. 인터넷은 늘 대충 틀린 손가락에게도 꽤 관대하다.
공개 전부터 이미 사람들은 편을 갈랐다.
Blue Light는 첫인상이 좋았고, Pale Blue Dive는 어제 몸이 앞으로 쏠렸고, 오늘은 제목만 보고도 이건 훅 있을 듯 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 말은 기대라기보다 보험에 가까웠다. 맞으면 내가 먼저 알아본 거고, 틀리면 회사가 또 무드만 팔았다고 하면 됐다. 인터넷은 늘 이렇게 비겁하게 안전하다. 여섯 시 전 타임라인에는 감상보다 자세가 먼저 올라왔다. 오늘도 별로면 안 들음, 머큐리까지는 봐줌, 수은이면 질척할 듯, 수성이면 우주 또 하는 거냐 같은 말들. 아직 아무것도 안 들은 사람들이 벌써 자기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오늘은 노래 공개일이면서 동시에 입장문 사전 작성일이었다. 참 성실하게 못났다.
여섯 시가 되자 glassh(our) - Mercury (1 min preview)가 올라왔다.
설명란은 여전히 짧았다. 03. Mercury / from 1st EP <Soft Voltage> / D-4. 플레이를 누르자 Knew it pulls. Came closer.가 바로 튀어나왔다. 빠른 곡은 아니었다. 대략 108 근처에서 몸을 질질 끄는 쪽인데, 킥이 쾅 하고 찍히는 게 아니라 둥둥 말렸다. 베이스도 전날처럼 얇게 뜨지 않았다. 방바닥 밑에서 고무공 하나 굴러가는 것처럼 따라붙었다. 보컬은 마이크 좀 떨어져 주세요가 아니라 마이크 그릴에 입술 닿은 거 아님? 쪽이었다. 기타는 리프를 길게 들이밀지 않았다. 디스토션을 두껍게 건 소리도 아니었다. 피크가 은박지 끝을 짧게 긁고 지나가는 정도. 그 짧은 긁힘 때문에 사람들이 파형을 눌렀다. 처음 좋아요보다 먼저 몰린 건 0:31이었다.
사운드클라우드 댓글도 처음부터 단정하지 않았다.
제대로 듣는 사람보다 잘못 들은 사람이 많았고, 그 잘못 들은 말이 더 빨랐다. won't wipe off는 원 와이프 오프가 됐고, low-key touch는 로키 터치, 키 낮은 터치, 그냥 손등 부분으로 흘렀다. 그런데 오타가 엉망이어도 재생바는 비슷한 데 멈췄다. 0:31, 0:39, 0:47. 귀는 손가락보다 조금 덜 거짓말했다.
Mercury는 처음부터 큰 장면을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물건을 하나씩 좁은 책상 위로 밀어 놓았다. 첫 줄의 pulls는 손목을 잡아끄는 말처럼 들렸고, won't wipe off는 지우개로 문질러도 남는 연필 자국 같았다. silver only stretches longer에서는 신스가 넓게 퍼지지 않고 얇게 늘어졌다. 형광등 아래에서 알루미늄 포일을 잡아당기면 나오는 찢어지기 직전의 반짝임. 그 밑에서 베이스는 너무 깨끗하지 않게 둥글었다. 휴대폰 스피커로 들으면 M.E.R.-cury만 웃기고, 이어폰을 꽂으면 그 뒤의 저역이 늦게 걸렸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두 번 다른 말을 했다. 처음엔 알파벳 장난이라고 비웃다가, 삼십 분 뒤에는 0:47 들어 봐 링크를 보냈다.
사운드클라우드 댓글의 이상한 점은, 처음에는 다들 0:31에 몰렸다가 조금 뒤에는 0:39와 0:47로 흩어진다는 거였다. 첫 파도는 엠이알큐리였다. 두 번째 파도는 low-key touch였고, 세 번째 파도는 surface였다. 이런 순서는 꽤 중요했다. 훅이 사람을 데리고 왔고, 낮은 쪽 소리가 사람을 오래 붙잡았다. 그래서 훅빨이라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훅만 있었다면 댓글은 0:31에서 멈췄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굳이 0:47을 찾아가서 여기 밑에 뭐 있음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대체로 그런 말은 음악을 아는 척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뭔가 들린 사람이 쓴다. 말은 허술한데 귀는 꽤 성가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더 단순해졌다.
한 사람은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M.E.R.-cury 부분을 세 번 돌린 뒤 메모장에 엠이알큐리 = 약 오름이라고 썼다. 다른 사람은 won't wipe off를 원 와이프 오프로 잘못 받아 적고도 그냥 올렸다. 누가 바로잡아도 별로 상관없었다. 정확한 가사보다 먼저 남은 건 발음의 생김새였다. M에서 입술이 닫히고, R에서 혀가 뒤로 말리고, cury에서 갑자기 힘이 빠졌다. 그 짧은 입모양 사이로 킥이 둥둥 들어오니까 훅이 장난만 치다 끝나지 않았다. 누가 댓글에 기타 소리 좋네요라고 쓰자 다른 사람이 어느 기타요 들리다 말던데라고 물었고, 세 번째 사람이 그 들리다 마는 게 좋다고요라고 답했다. 이 정도면 토론이 아니라 야간 청력 싸움이었다.
트위터에는 좋다보다 따라 했다가 먼저 퍼졌다. 누군가는 M.E.R.-cury를 그대로 쳤고, 누군가는 엠점이점알점큐리라고 풀었다. 누군가는 머구리라고 썼다가 맞춤법 지적을 받았고, 또 누군가는 수은밴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웃긴 건 다들 제목으로 놀면서도 파형을 찍는 위치는 비슷했다는 점이다. 0:31. 그 짧은 알파벳 훅이 너무 뻔한데, 킥과 베이스가 장난을 받쳐서 싼티가 덜 났다. 노린 티 난다와 근데 톤 좋다가 같은 타임라인에 붙었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모순적이다. 아니, X는 원래 그렇게 꼴값과 청력이 한 줄에 붙는다.
더쿠 쪽에서는 제목보다 훅의 귀찮음이 먼저 정리됐다.
엠이알큐리를 따라 했다고 쓰기 싫어서 그 알파벳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나왔고, 수은 맞냐 수성 맞냐는 댓글은 세 번째 줄쯤에서 이미 농담이 됐다. 누군가는 오늘 곡이 제일 대중적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 노렸다고 했다. 둘 다 같은 훅을 세 번 들은 뒤였다.
쇼츠에서는 곡이 더 못생기게 잘렸다. 은빛 커버 위에 흰 자막으로 M, ., E, ., R, .이 하나씩 찍혔다. 어떤 영상은 보컬 대신 키보드 입력 소리를 얹었다. M, 점, E, 점, R, 점. 얄미울 정도로 원곡 킥과 맞았다. 휴대폰 스피커에서는 그 장난만 남았다. 이어폰을 꽂으면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0:39의 low-key touch에서 숨이 낮아지고, 0:47의 surface 밑에서 베이스가 퍼지지 않고 모양을 잡았다. 그래서 쇼츠 댓글에도 원곡으로 들으니까 덜 가벼움 같은 말이 조금씩 붙었다. 사람들은 짧은 영상으로 놀고, 다시 사운드클라우드로 돌아가서 딴소리를 했다.
쇼츠의 장점은 음악을 납작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가끔 그 납작함 때문에 원곡이 다시 선명해진다. M.E.R.-cury 자막만 본 사람은 웃고 지나가지만, 원곡 링크를 밟은 사람은 0:24의 킥이 생각보다 둥글게 몸을 밀고 있다는 걸 듣는다. 그래서 영상 댓글에는 꼭 한 줄씩 이상한 고백이 섞였다. 자막만 보고 웃었는데 원곡이 덜 가볍다. 이 말은 홍보 문장으로 쓰기엔 너무 못생겼지만, 실제로는 제일 쓸모 있었다. 농담으로 들어온 사람을 사운드클라우드로 되돌려 보내니까.
디시 쪽에서는 바로 순위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대충이었다. 현재까지 괄호밴드 1분 순위. 본문도 별거 없었다. 1. 머큐리. 2. 페블다. 3. 블루라이트. 반박시 니 말도 맞음. 그런데 댓글은 금방 길어졌다. 누군가는 블루라이트가 제일 곡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페블다가 제일 밴드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머큐리는 훅 하나로 이미 장사 된 거 아니냐고 했다. 욕이 섞이고, 맞춤법이 깨지고, 중간중간 제대로 들은 말이 튀어나왔다. F#m라는데 D로 빠질 때 갑자기 불 켜짐, B minor 쪽으로 내려가는 데 있어서 저역이 둥글게 들리는 듯. 그런 말이 너무 얌전하면 이상했겠지만, 앞뒤에 병신아와 무섭다가 붙어 있어서 덜 수상했다.
순위글은 합의가 아니라 불씨다. 블루라이트는 곡, 페블다는 몸, 머큐리는 입이라는 식의 이상한 삼분법이 돌았다. 아무도 공식 리뷰를 쓴 게 아닌데, 세 곡이 서로 다른 이유로 기억된다는 건 벌써 드러났다. 첫 곡은 들어가기 쉬웠고, 둘째 곡은 몸을 흔들었고, 셋째 곡은 입을 움직였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노래를 듣는 척하면서 자기 취향의 명패를 만들고 있었다. 난 아직 블라, 난 피비디, 난 대큐리, 난 내일 블리드 보고 정함. 정함이 너무 많았다. 실제로 정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냥 내일도 들을 명분을 만들었을 뿐이다.
더쿠에서는 조금 덜 거칠었다.
제목은 glassh(our) Mercury 1분 공개됐는데 훅 반응 오는 듯. 본문에는 사운드클라우드 링크와 0:31 캡처가 붙었다. 댓글은 길지 않았다. 엠이알큐리 계속 따라함, 영어 훅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발음이 좋다, 노래 좋은데 팬들 벌써 기세 과한 건 피곤함. 같은 게시글 안에서 호감과 피로가 같이 움직였다. 한 댓글은 블루라이트는 조명 페블다는 속도 머큐리는 입모양이라고 적었다. 누가 평론가처럼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점심 메뉴 고르듯 써서 더 오래 남았다.
그 피로감도 D-4의 일부였다. 곡이 괜찮게 나오면 호감층이 먼저 기세를 올리고, 관망층은 곡보다 그 기세에 먼저 질린다. 그래서 같은 사람도 노래는 좋은데 벌써 왜 이러냐고 썼다. 그 말은 사실 노래가 들렸다는 뜻이라 더 웃겼다. 들리지 않았으면 팬 과열도 귀찮지 않다. 그냥 지나가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나가지 않고 굳이 글을 썼다. 너무 띄우는 듯, 회사 냄새 남, 근데 훅은 붙음, 내일까지만 봄. 내일까지만 보겠다는 사람은 보통 모레도 본다. 인간은 자기 시간표를 너무 우습게 본다.
인디 쪽 카페는 훅보다 악기 얘기로 조금 늦게 붙었다.
Mercury는 기타가 많이 들리는 곡은 아닌데 톤은 좋네요라는 글이 올라오자 댓글이 이어졌다. 전날에는 드럼 속도 얘기가 많았다면, 이날은 베이스와 신스가 댓글을 얻었다. 누군가는 F# minor 바탕인데 D major 쪽으로 밝아질 때 은색 느낌이 납니다라고 적었다가 바로 표현이 웃긴데 진짜 그렇게 들리네요를 덧붙였다. 다른 사람은 B minor로 잠깐 내려가는 구간이 풀버전에서 더 길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거기까지 간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있었다. 매일 1분씩 듣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가사를 외우는 대신 코드가 어디로 빠지는지 잡고 있었다.
그 카페 글 아래에는 싱글감이라는 말도 붙었다.
공식 타이틀이 뭔지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벌써 타이틀을 다시 뽑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Blue Light가 문이면 타이틀은 그쪽일 것 같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머큐리가 플레이리스트에서 더 오래 갈 듯이라고 했다. 이건 고급한 분석이 아니라 자기 재생목록을 기준으로 한 아주 실용적인 판단이었다. 출근길에 틀기 좋은 곡, 밤에 혼자 들을 곡, 쇼츠로 잘릴 곡, 공연에서 손이 먼저 반응할 곡. 같은 1분 프리뷰를 듣고도 사람들은 이미 용도를 나누고 있었다. 회사가 곡 소개를 아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빈칸에 자기 하루를 갖다 넣었다. 대단한 해석이 아니라 재생 습관이었다.
밤 여덟 시쯤부터는 재생 장비 얘기도 조금씩 섞였다. 휴대폰 스피커로 들은 사람은 훅만 남는다고 했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들은 사람은 스치고 나면 뒤의 킥이 생각보다 낮게 말린다고 했다. 싸구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기타의 얇은 긁힘이 사라지고, 보컬 자음만 튀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말을 바꿨다. 처음에는 틱톡 훅 같다고 했다가, 이어폰으로 다시 듣고 베이스가 뒤에서 욕심낸다고 했다. 곡이 재생 장비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 주니까, 댓글도 서로 조금씩 어긋났다. 누군가는 이거 차에서 틀면 베이스만 남겠는데라고 했고, 누군가는 노트북으로 들으면 기타가 종이처럼 얇다고 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1분짜리라 다 보여 주지도 않으면서, 이상하게 각자 들은 물건만 들고 나오게 만들었다.
가사 캡처는 M.E.R.-cury에서 멈추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doesn't break the surface와 left on the edge가 더 늦게 돌았다. 누군가는 손등에 은색 볼펜 자국을 찍은 사진을 올렸고, 누군가는 체온계 사진 위에 warm on the glass를 미리 갖다 붙였다가 아직 그 줄은 1분 안에 안 나왔다고 지적받았다. 그 지적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디까지 공개됐고 어디부터는 아직 모르는지 구분하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과몰입하는 게 아니라, 파형 안에 들어온 줄과 아직 안 열린 줄을 따로 세고 있었다.
Mercury는 따라 하기 쉬운 곡으로만 퍼지면 빨리 닳을 수 있었다. 그런데 0:39의 low-key touch, just enough, 0:47의 doesn't break the surface, 0:53의 부드러운 mer-cu-ry가 밤이 될수록 다시 주워졌다. 낮에는 M, E, R만 돌아다녔고, 밤에는 그 사이에 있던 낮은 문장들이 올라왔다. 훅이 사람을 데려오고, 베이스와 숨이 사람을 조금 더 붙잡았다. 얄팍한 농담으로 들어온 사람이 surface 줄을 다시 찍고 있었다. 그 정도면 장난도 자기 밥값은 한 셈이었다.
사적인 대화에서는 더 못생기게 퍼졌다. 링크만 던지고 0:31, 혀, 머구리 아님, 베이스 들어 봐 같은 말이 붙었다. 어떤 단톡에서는 한 사람이 엠이알큐리를 세 번 보냈고, 다른 사람이 차단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조금 뒤 같은 사람이 0:47은 들어 봐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정의 문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기 말을 뒤집는 속도였다. 아까는 장난 훅이라고 했던 사람이, 삼십 분 뒤에는 doesn't break the surface를 들으라고 했다. 낮은 문장이 훅 뒤에서 늦게 올라오는 동안 사람들 말도 같이 바뀌었다.
비공개 계정들은 훨씬 덜 체면을 챙겼다. 공개 타임라인에서는 훅 좋네 정도로 끝낸 사람이, 잠긴 계정에서는 목소리가 너무 가까워서 싫음 같은 말을 썼다. 웃긴 훅으로 들어왔는데 보컬 자음이 입 안에 남아서 싫다는 말. 별로라는 뜻은 아니었다. 별로면 안 쓰고 지나간다. 이렇게 구시렁대는 사람은 이미 한 번 더 들은 사람이다.
이날의 비계 글은 대체로 고백보다 정정에 가까웠다. 안 좋아함이라고 쓰고 바로 아래에 근데 0:53은 좋음을 붙이는 식이었다. 자기 말을 한 줄 안에서 뒤집는 사람이 많았다. 영어 훅 싫음 / 근데 이건 입에 붙음, 회사 냄새 남 / 근데 곡은 괜찮음, 너무 노림 / 근데 성공함. 이 정도면 감상보다 항복문에 가까웠다. 다만 아무도 항복했다고 쓰지는 않았다. 사람에게는 마지막 체면이라는 게 있다. 별 쓸모는 없지만 다들 들고 다닌다.
자정 가까이 되자 말은 내일로 넘어갔다.
공식이 다음 곡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제목은 이미 떠 있었다. Bleed. 그 단어 하나 때문에 커뮤니티의 톤이 조금 달라졌다. Mercury가 입에 붙었다면, Bleed는 목에 걸릴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누군가는 오늘 훅이 너무 말랑하게 굴러서 내일 기타가 더 험하게 긁힐 것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드럼이 이제 터질 차례라고 했다. 누구도 아직 풀버전을 들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파형을 기다리는 손은 다음 날 여섯 시에 맞춰졌다. D-4의 끝은 박수보다 키보드 소리에 가까웠다. M-E-R. 그리고 아직 안 열린 제목 하나. Bleed.
저녁 아홉 시를 넘긴 뒤에는 각자 처음 들은 부분이 달라졌다.
누군가는 여전히 0:31만 돌렸고, 누군가는 0:39부터 0:53까지를 잘라서 보냈다. 같은 곡인데 낮과 밤의 댓글 온도가 달랐다. 낮에는 알파벳이 웃겼고, 밤에는 low-key touch 뒤의 숨이 거슬렸다. 사무실에서 몰래 들은 사람은 훅을 기억했고, 집에 와서 헤드폰을 낀 사람은 베이스가 늦게 몸을 잡는 걸 들었다. 그런 차이 때문에 말이 한쪽으로만 몰리지 않았다. 장난으로 들어온 사람이 조금 진지해지고, 처음부터 진지했던 사람은 오히려 훅을 놀렸다.
밤의 끝에서 Mercury는 오늘의 농담이 아니라 내일의 기준점이 됐다. Blue Light는 첫 문을 열었고, Pale Blue Dive는 몸을 움직이게 했고, Mercury는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제목을 발음하게 했다. 이 셋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귀에 남았다. 아직 누구도 앨범 전체를 모른다. 아직 멤버 이름도 확정해서 부르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제 내일 여섯 시를 안다. 이게 제일 지저분한 성과다. 좋아한다고 쓰지 않아도 시간표가 몸에 들어간다. 회사가 잘했다는 말은 하기 싫지만, 사람을 길들이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