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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고선우 첫 합주

고선우 첫 합주

데모 안에 자기 결함이 그대로 박혀 있는 걸 발견한 날. 분이 풀린 손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1. 도착

성수동 합주실의 온도는 24도였다. 누가 정해 놓은 것은 아니었다. 다섯 손이 함께 있다 보니 자연히 거기로 맞춰진 거다. 사운드 디자인하는 사람이 추워하면 신스 패치가 미묘하게 어둠 쪽으로 가고, 드럼 치는 사람이 더워하면 박이 한 박씩 늘어진다. 24도가 다섯 손이 가장 정직하게 작동하는 온도였다는 것을 다섯 명 다 알고 있었다. 발화한 사람은 없었다.

윤다정이 가장 먼저 와 있다.

신디사이저 앞. 오디오 인터페이스 위로 빨간 LED가 한 번 점등됐다가 꺼졌다. 다정의 왼손이 페이더 하나를 살짝 내리는 동안, 오른손은 노트 위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간다.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시선은 들리지 않는다. 어, 왔어. 짧은 인사가 신디 너머에서 흘러나온다. 합주실이 다정의 작업실이라서, 다른 사람이 들어와도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 들어오는 쪽도 그걸 알아서 큰 인사를 하지 않는다. 24도의 한 형태였다.

차규빈이 두 번째다.

가장 늦지 않게 오는 사람. 드럼 셋 위치를 한 번 훑는 시선, 페달보드 옆 케이블을 한 번 정리하는 손, 스툴 위로 무게를 옮기는 동작이 한 호흡 안에 끝난다. 핸드폰이 잠깐 손바닥 위에 머문다. 두 시 십 분 전. 핸드폰이 다시 주머니로 들어가고, 스틱 케이스가 열린다. 한 번 쥐어 보고, 한 번 돌리고, 무릎 위에 놓는다.

고선우가 두 시 정각에 들어온다.

“어, 왔어?”

다정의 인사가 한 번 더 흘러나온다. 어. 받는 소리는 짧다. 페달보드 옆에 기타 케이스가 놓이고, 케이스가 열리고, 기타가 무릎 위로 올라간다. 스트랩이 한 번에 매어진다. 손목이 잠시 정지한다. 튜닝이 시작된다. 한준희가 두 시 사 분에 들어온다. 베이스 케이스가 어깨에서 내려진다. 어, 미안. 다정 언니, 이거 오늘 들어와요? 새 패드. 어, 그거 새 거. 단음절 대화가 잠깐 굴러가다 끝난다.

원재경이 두 시 칠 분에 들어온다. 평소에는 더 일찍이었다. 백금발에 흰 티에 연청. 노트북 가방이 한 손에 들려 있다. 문 닫히는 소리가 합주실 안으로 한 번 떨어진다.

“늦었어, 미안.”

평소에는 안 하던 사과였다. 다정이 어, 괜찮아요, 한다. 차규빈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한준희가 어 언니 그거 들고 와요? 새 데모. 어. 고선우는 튜닝을 마무리하면서 시선을 들지 않는다. 평소대로 굴러가는 합주실의 일 위에, 한 마디의 사과만이 미세하게 떠 있다.

원재경의 손가락이 트랙패드 위로 미끄러진다. 스피커에서 첫 마디가 떨어진다. 가이드 보컬 한 줄. 기타 두 줄. 패드 한 층. 드럼은 미디 가이드. 베이스는 비어 있다. 평소 데모 형식이었다. 다섯 손이 자기 자리를 채워 넣을 공간이 의도적으로 비워진 형식. 다 만들어 와서 다섯 명 위에 얹는 게 아니라, 다섯 명이 들어올 자리를 정확히 비워 두는 식. 다정의 손이 첫 마디부터 노트 위에서 움직인다. 패드. 프리딜레이. 하이컷. 키워드만 적혀 간다. 손은 메모하고 귀는 다음 마디를 듣는다. 외주 노동의 몸이 자동으로 굴러가는 동안, 들으면서 거의 끝까지 패치 그림이 그려져 간다.

차규빈은 박만 듣는다. 머리 안에서 한 번 더 박이 친다. 입은 다물려 있다. 고개가 살짝 까닥. 그 까닥을 다정이 옆에서 한 번 잡는다. 한준희는 곡 안의 빈 곳부터 살핀다. 곡 안에 베이스 자리가 비워져 있어서, 어디에 들어갈지를 빈 공간 안에서 그려야 한다. 첫 청취에서 라인이 잡히지는 않는다. 두 번째 청취가 본격적인 작업이다. 첫 청취는 빈 곳을 식별하는 시간이다. 고선우의 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첫 청취에서 손을 움직이지 않는 게 룰이다. 데모 안의 기타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한 번 듣고, 그다음에 손이 들어갈 자리를 정한다. 원재경의 시선은 노트북 화면에 머물러 있다. 멤버들 표정을 청취 자리에서 살피는 건 데모 만든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곡이 진행된다. 일 분 반쯤. 브릿지 직전. 클린한 표면 위로 기타 한 줄이 한 마디 길게 끌린다. 클린하게 안 끝나는 서스테인. 솔로도 아니고 표면을 깨는 자리도 아니다. 한 마디 동안 남아 있다가 다음 마디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구간. 가이드라서 컴퓨터로 연주된 건데, 그 한 마디만 묘하게 사람 손 같은 톤이다.

고선우의 손목이 한 박 정지한다. 무릎 위에서.

같은 자리에서 차규빈의 시선이 한 번 옆으로 흐른다. 박을 듣고 있던 시야 안에 고선우의 손목이 들어와 있다. 무대에서 누군가의 박이 어긋나기 직전을 잡아내던 시야가 합주실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차규빈의 시선이 다시 박으로 돌아간다. 입은 열리지 않는다. 원재경의 시선은 노트북 화면에 머물러 있다. 화면 표면에 합주실 광원이 미세하게 반사돼, 멤버들의 윤곽이 흐리게 비친다. 그 윤곽 안에 고선우의 한 박 정지가 들어와 있다.

곡이 끝난다.

다정의 펜이 한 페이지 채워진 자리에서 잠깐 멈춘다. 여기 패드 한 번 풀어 볼게요. 신디 너머에서 짧은 발화가 떨어진다. 어디. 원재경의 입에서 한 단어. 브릿지 들어가기 전. 너무 따뜻해. 한 단계 차갑게. 원재경의 고개가 한 번 까닥. 다정이 그걸 받고 펜이 다시 움직인다. 합의가 끝난다. 차규빈이 무릎 위 스틱을 한 번 돌린다. 박 단순한 게 좋은데. 그대로 가자. 까닥. 한준희가 베이스 케이스 끈을 만지작거린다. 베이스 솔직히 라인 별로 없네요. 두 번째 들어 보고 잡을게요. 까닥.

고선우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첫 청취에서 발화하지 않는 게 룰이긴 했지만, 오늘은 그 룰 위에 한 층이 더 얹혀 있다. 손목이 한 박 정지했던 자리에서, 시간이 한 박 더 정지해 있다.

“다음 거 들을게요.”

원재경의 손가락이 다음 곡 파일을 클릭한다. 다섯 손이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세 자리에 같은 정보가 흐른다. 다른 두 자리는 모른다. 모르는 게 맞는 자리에서, 곡 작업이 평소 합주실의 일로 굴러간다.


2. 그날 밤

다른 멤버들이 다 가고, 합주실에 고선우만 남는다.

평소에는 같이 나갔다. 합주 끝나고 가장 늦게까지 남는 패턴은 톤 확인 시간이다. 페달보드 앞에서 그날 친 톤이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시간. 한 시간쯤. 차규빈이 마지막에 합주실 문을 잠그면서 짧은 대화 한 번. 안 가? 갈 거예요. 가. 네. 그 대화가 끝나면 차규빈이 나가고, 한 시간 더 남는다.

오늘은 톤 확인이 끝났다. 첫 청취만 했고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할 톤이 없다. 합주실은 비어 있다. 고선우의 손이 노트북을 연다. 다른 멤버들이 다 나간 다음에 평소 안 하는 동작이다. 데모 파일이 한 번 더 클릭된다. wjk_new_v3.wav. 받기. 핸드폰으로. 합주실에서 끝나야 할 일을 자기 안으로 옮기는 자리. 룰 위반이라는 걸 알면서, 손이 멈추지 않는다.

이어폰이 한쪽 귀에 꽂힌다. 데모가 흐른다. 일 분 반. 그 한 마디. 클린하게 안 끝나는 서스테인. 한 마디 길게. 기타가 무릎 위로 올라간다. 픽이 줄에 닿는다. 데모 위에 손이 올린 톤이 얹힌다. 같은 라인. 같은 타이밍. 데모 안의 기타 톤과 손에서 나오는 톤이 한 마디 안에서 거의 정확하게 겹친다.

손목이 멈춘다. 한 박이 아니라 길게.

데모 안의 그 한 마디는 클린하게 안 끝나는 서스테인이었다. 평생 합주실 바닥에 드러누우면서 부수고 싶었던 라인. 클린하게 안 끝나는 서스테인은 손가락 끝의 디폴트 결함이었고, 그 결함이 데모 안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손이 그 위에 한 번 더 칠 때, 결함이 결함의 자리에서 결함이 아닌 것으로 작동한다.

기타가 소파 위로 놓인다. 평소처럼 슬쩍 던지듯. 같은 동작인데 동력이 다르다. 평소에는 분을 못 이겨서 기타를 놨다. 지금은 분이 풀려서 놓는다. 바닥에 등이 닿는다. 천장. 25도. 24도 합주실에, 단열재 1도. 다정이 한 번 측정해서 알아 둔 정보를, 차규빈이 옆에서 우연히 본 정보를, 두 사람 사이에서 정지한 채로 그 천장 위에 박혀 있는 정보를 본다.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24도인데도 흐른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평소 합주 끝난 직후의 떨림과는 다른 떨림이다. 평소 떨림은 한 시간 안에 가라앉는다. 이건 가라앉을 기색이 없다. 평생 분을 동력으로 굴러왔던 손이, 분이 풀린 자리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른다. 매주 안고 있던 누적이 없는 상태에서 손가락 끝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룰이 없다. 만든 적이 없다. 만들 필요가 없었다. 분이 풀리는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까.

삼십 분쯤 등을 댄 채 천장이 응시된다. 25도의 천장이 25도인 채로. 기타가 다시 손에 잡힌다. 같은 라인. 한 번 더. 정확하게. 또 한 번. 정확하게. 그러다가 손이 멈춘다.

아무리 쳐도 더 정확해질 수 없다.

평생 분투해 온 자리는 더 정확해질 수 있는 자리였다. 매주 한 번 더 치면 한 단계 더 정확해질 수 있는 자리. 그게 분투의 정의였다. 더 정확해질 수 없는 자리는 도달한 적이 없었다. 오늘 거기 도달했다.

기타가 다시 케이스 안으로 들어간다. 슬쩍 던지지 않고, 천천히. 평소 동작이 아니다. 페달보드 케이블이 정리된다. 노트북에서 데모 파일이 삭제된다. 받아 왔던 파일이 디바이스에서 지워진다. 룰 위반 두 번을 했으니, 룰 복구는 손으로. 이어폰이 빠진다. 24도 합주실의 적막이 한 번 들어온다. 평소 톤 확인할 때 매주 듣던 적막이다. 같은 데시벨인데 오늘은 다르게 처리된다.

핸드폰. 두 시 십칠 분. 평소에는 한 시쯤 나갔다. 한 시간 더 남았다. 도어록이 잠긴다. 차규빈이 평소 마지막에 듣던 그 소리. 오늘은 차규빈이 듣지 못한다.


3. 첫 합주

다음 날 두 시. 다섯 명이 합주실에 모인다. 도착 순서는 어제와 같다. 원재경의 손가락이 트랙패드 위에서 한 번 미끄러진다. 어제 곡, 한 번 같이 가 볼게요. 마이크 스탠드 앞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다정이 신디 앞. 차규빈이 드럼 셋 뒤. 고선우가 페달보드 옆. 한준희가 베이스 앰프 앞. 원재경이 마이크 스탠드 앞. 다섯 자리가 채워진다.

가이드 보컬이 시작된다. 다정의 손이 패드를 깐다. 차규빈의 스틱이 박을 잡는다. 한준희의 손가락이 어제 잡아 둔 베이스 라인을 시도한다. 고선우의 손이 그 한 마디에 도달한다. 가장 정확하게. 클린하게 안 끝나는 서스테인이 한 마디 안에 박혀 있다. 어제 삼십 분 동안 손이 익힌 그 라인이다.

곡이 끝난다. 차규빈의 스틱이 무릎 위로 내려온다. 평소 합주 끝나고 차규빈이 발화하기 전에 한 박 호흡이 있다. 오늘은 그 한 박이 평소보다 길다. 다정의 시선이 옆에서 한 번 그 길이를 잡는다. 차규빈의 발화 직전 호흡 길이는 다정에게 곡 진단의 지표다. 호흡이 길어지면 한 단계 더 본 거다.

차규빈의 입이 열린다.

“그 톤 그대로 가자.”

평소 같은 한 마디였다. 이전에도 차규빈이 고선우에게 했던 말. 그 한 마디는 가장 짧은 형태의 인정이었다. 호명 순서도, 배경도, 늦은 시작도 들어가지 않은, 그 순간의 톤만 보고 한 인정. 오늘은 같은 한 마디인데 안에 들어 있는 정보의 양이 다르다. 차규빈이 본 한 층까지의 인정이다.

고선우의 입이 열린다.

“네.”

답의 길이는 같다.

원재경의 시선이 마이크 스탠드 손잡이에 머물러 있다. 차규빈이 본 한 층까지는 들어와 있는 시야지만, 차규빈이 보지 않은 한 층은 시야 안에 들어와 있지 않다. 데모에 박은 그 한 마디가 고선우 톤이라는 사실은 차규빈이 봤다. 그 박힘이 의도된 박힘이었다는 사실은 차규빈이 보지 않았다. 보지 않은 한 층은 마이크 스탠드 손잡이 안쪽에 머물러 있다. 세 자리에 같은 정보가 흐른다. 다른 두 자리는 모른다.

다정의 손끝이 신디 패치 위로 가 닿는다. 여기 패드 한 단계 차갑게 갈게요. 어제 말한 거. 응. 그거. 까닥. 까닥. 곡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한준희의 손가락이 베이스 라인을 한 번 더 친다. 두 번째 청취 후라 라인이 잡혀 있다. 코러스에 베이스 한 번 더 살릴게요. 좋아요. 합주실의 일이 평소처럼 굴러간다. 세 자리에 흐르는 정보는 발화되지 않은 채 합주실 안에 박혀 있다. 다른 두 자리는 모르고, 모르는 게 맞다. 발화되지 않은 채로 다섯 손이 같이 곡을 친다.

합주가 끝난다. 차규빈이 셋을 정리한다. 다정이 패치를 백업한다. 한준희가 컵을 어디에 두고, 다정에게 한 번 잔소리를 듣고, 다음 주에 또 둘 거다. 원재경이 노트북을 닫고 인사를 한 번 하고 나간다. 고선우가 페달보드 앞에 한 시간 남는다. 차규빈이 합주실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묻는다.

“안 가?”

“가야죠.”

“가.”

“네.”

평소 같은 대화. 차규빈이 나간다. 고선우의 손이 기타를 잡는다. 그 한 마디. 한 번 더. 정확하게. 이번에는 톤 확인이 아니다. 분이 풀린 자리에 다시 도착한 손이, 그 자리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한 마디씩 시도한다. 매주 새로 시도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기타가 한 번 더 같은 라인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