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ATTERZ

World Flow

001. D-14

D-14

여섯 장의 사진이 먼저 올라오고, 사람들은 아직 이름도 모르는 밴드의 윤곽을 악기와 손끝에서 읽기 시작한다.

유리처럼 먼저 올라온 것들

4MATTERZ 공식 인스타그램 피드 위로 여섯 장짜리 사진 묶음이 떴다.

첫 장의 청록 조명이 휴대폰 화면을 한 번 차갑게 씻었다. 캡션은 달랑 세 줄. glassh(our), 1st EP <Soft Voltage>, D-14. 설명이라기보다는 문패에 가깝다. 누가 사는지 알려 주기보다, 여기부터 들어오라는 쪽. 두 번째 장에는 흰 기타 바디의 가장자리와 금빛 픽가드가 눈에 띄었다. 세 번째 장에는 빨간 기타 표면이 조명을 받아 어두운 체리색으로 보이는 것. 네 번째 장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 얹혀 있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스틱 끝이 하이햇 위쪽을 비켜 가는 사진. 마지막 장에는 백금색 머리카락 한 줄과 턱선 같은 것만 남았다. 누가 노래하는지, 누가 앞에 서는지, 몇 명인지,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대신, 화면에는 악기 표면과 손목 높이, 케이블 끝 같은 것만 남았다.

사람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자기 취향이 들키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한다.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다. 인스타 댓글은 그냥 전시용. 진퉁 리액션은 각 타임라인과 커뮤니티로 뿔뿔이 흩어졌다. 조명 앞에서는 예의 챙기고, 어두운 곳에서는 더 정확해지는 게 인간이다.

게시물이 올라온 지 십 분쯤 지나자, 여섯 장의 사진들이 공식 계정의 네모 칸 밖으로 누수됐다.

누군가는 첫 장만 잘라 배경화면처럼 만들고, 누군가는 여섯 장을 한 장짜리 콜라주로 붙이고. 흰색 기타 사진은 맨 오른쪽 아래로 밀려났다가 다시 중앙으로 올라왔다. 빨간 기타는 채도가 조금 더 올라간 채 돌아다녔다. 예쁘기는 하니까. 원본의 차가운 청록은 각자 쓰는 보정앱을 지나며 민트가 됐다가, 남색이 됐다가. 어떤 건 어디인가의 카페 조명처럼 탁해졌다. 그래도 악기 윤곽은 남는다. 사람 얼굴은 흐려지고 물건은 더 선명해지는 꼴. 이게 회사가 바란 화면일 수도 있고, 도리어 제일 싫어할 화면일 수도 있다.

첫날 판세는 호감으로만 설명되지 않았다.

비율로 치면, 호기심 넷, 비꼼 셋, 미감 저장 둘, 장비 보는 사람 하나 꼴? 누군가는 색을 저장했고, 누군가는 괄호를 욕했고, 누군가는 악기 이름을 맞히려 들었다. 혹자는 벌써 밴드냐 브랜드냐 같은 말을 꺼냈다. 같은 사진 여섯 장을 놓고, 각자 다른 이유로 발목이 잡혔다. 첫날의 좋은 징조는 사랑받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뺏는 일이다. 사람들은 마음에 든다는 말보다 갈취당한 시간을 토로하는 데에서 티를 냈다.

처음 사진을 본 사람들은 소리를 상상하려고 들었다. 흰 반공명 기타면 너무 두껍지 않은 톤일지, 빨간 재즈마스터면 브릿지 쪽이 날카롭게 올라올지. 키보드는 패드로 깔리는 건지, 피아노처럼 눌릴 것 같은지. 음악이 없기 때문이다. 빈 오디오 자리에 사람들이 자기 귀를 가져다가 댔다. 첫날의 관심은 호감보다 오답에 가까웠다. 오답이 많아야 답지를 본다. 인터넷은 대체로 그렇게 품위 없다. 사진을 눌러 확대하고, 다시 닫았다가 두 번째 장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캡션을 복사해 검색창에 넣었다가 괄호 때문에 엉키는 걸 본다.

트위터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지가 좋고, 이름이 특이하고, “얼굴 안 깐 밴드”는 알티 타기 좋아서. 단, 첫날 반응은 호감 100이 아니라 호기심 40 + 비꼼 30 + 미감 저장 20 + 장비 보는 사람 10 정도로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저기에서 회사 로고 붙은 것보다 2차 가공물이 더 돌아다녔다.

포매터즈가 세 줄만 써 놓은 자리에는 짧은 욕과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음악이 없는 날에는 그런 게 사실상 첫 청음이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 들은 체하는 일. 뻔뻔하지만 모든 신인들이 한 번은 거쳐 가는 좁은 문이다. 읽는 법은 쉽게 통일되지 않았다. glassh(our)는 너무 길다. 소리 내어 읽기에는 괄호가 걸리고. 그래서, 누구는 괄호를 빼고 glasshour로 검색했다. 어떤 사람들은 glassh our로 대충 띄어 썼다. 한글로는 글래시, 글래스아워, 글래쇼, 글라샤워 같은 게 중구난방으로 얽혔다. 좋은 이름은 기억되고, 더 좋은 이름은 틀리게 불린다는데. 성가시게도, 이 이름은 후자의 방향으로 기울어 간다.

오후 다섯 시를 넘기자, 회사 이름을 아는 층과 모르는 층이 섞였다.

아는 사람들은 포매터즈의 작은 취향 과시를 먼저 봤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파란 사진과 괄호 이름만 보고. 같은 게시물을 보고도 한쪽은 또 이런 색감이네라고 했고, 다른 쪽은 이 회사 뭐 하는 곳임이라고 했다. 그 사이에서 악기 보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픽업과 브릿지를 맞힌다. 바로 아래 댓글에서는 누군가 빨간 거 예쁘다고만 썼다. 그 정도 간극이 좋았다. 너무 잘 아는 사람만 모이면 닫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 모이면 얕다. 첫날의 사진은 양쪽 모두에게 조금씩 불편했다. 별 희한한 마케팅이 다 있다.

디시는 더 노골적이고 빠르다. 다만 대형 갤에서 크게 돌기보다, 인디밴드 계열이나 여돌/음악 잡담 쪽에 짧게 올라오는 쪽. 말투는 훨씬 지저분하고, 좋은 말도 비꼬듯 나왔다. 디시 쪽에서 중요한 건 “바이럴 아니냐”가 거의 자동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무언가 새로 뜨면 일단 바이럴 의심부터 받는다. 특히, 공식 이미지가 너무 잘 빠질수록 더. 이것도 나쁜 건 아니야. 욕하면서 캡처를 퍼 나르면 그것도 노출이니까. 품위 없는 무료 노동이다.

더쿠에서는 욕 대신 피로가 먼저 붙었다.

이미지가 예쁘다는 말은 많다. 그 뒤에 근데가 따라와서 그렇지. 얼굴은 왜 안 보여 주는지, 이름은 왜 괄호가 들어가는지, 밴드면 노래를 먼저 줘야 하는 것 아닌지. 댓글은 짧았고, 같은 말을 해도 사람마다 걸린 지점이 달랐다. 사진을 본 사람이 모두 같은 취향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 어떤 사람은 색감을 봤고, 어떤 사람은 회사의 손길을 봤고, 어떤 사람은 아직 없는 소리를 기다렸다.

이것도 나름 사진이 괜찮으니까 나오는 소리다. 형편없었으면 국물도 없다. 하이햇 위의 스틱이 너무 깨끗하고, 키보드 위의 손이 살짝 애매해 보였지만. 기타는 그런대로 빛을 잘 받았고, 베이스는 일부만 보여 다소 답답했다. 이런 것들이 자꾸만 미련을 남긴다. 대충 지나가 놓고, 뒤에서 한 번 더 찾아 보는 정도의 미련을.

아직 유튜브에 공개된 건 없으나 인스타 사진이 쇼츠 캡처나 커뮤니티 게시물로 재가공됐다. 음악 소개 채널들이 “새 밴드 티저” 식으로 짧게 물기도. 얕은 반응이나 너르게 퍼졌다. 첫날이라 아직 약해 보인다. 유튜브 사람들은 영상이 있어야 움직이니까. 사진만으로는 트위터와 인스타가 더 빠르다.

이날 글래시는 노래를 들려 주지 않았다.

얼굴도 주지 않았다. 이름의 읽는 법도 주지 않았다. 좋은 것만 보면 아무것도 주지 않은 날. 그런데 인터넷은 아무것도 없을 때 제일 싸게 떠든다. 흰 기타의 홀, 빨간 기타의 광택, 키보드 위에 멈춘 손, 하이햇을 비껴 간 스틱, 금발 한 줄, 괄호 두 개. 그 작은 것들이 하루 동안 굴러다니며 먼지를 묻혔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데뷔는 늘 환호보다 작은 귀찮음으로 먼저 온다.